프랑스 대통령 에마뉘엘 마크롱(Emmanuel Macron, 1977년 생, 만 47세 2025년 7월 기준)과 영부인 브리지트 트로뉴(Brigitte Trogneux, 1953년 생, 72세)의 이야기는 단순한 연애담이 아니다. 그것은 ‘사랑의 자유’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사회의 품과, 개인의 신념이 어떻게 공적 역할로 연결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드문 서사다. 24세의 나이 차, 사제지간이라는 출발, 기존 사회 질서의 틀을 넘은 이들의 만남과 결합은 수많은 편견과 시선을 이겨낸 결과였다. 그리고 그 바탕엔 프랑스 특유의 문화적 수용성과 개인 중심의 가치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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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 문학과 연극, 그리고 청년 마크롱의 열정
1993년, 북부 프랑스의 도시 아미앵. 고등학생 마크롱은 학교 연극반 활동을 통해 문학 교사 브리지트를 만난다. 마크롱은 당시 15세였고, 브리지트는 39세, 세 자녀의 어머니이자 교사였다. 감수성 예민한 소년은 그녀의 지적 매력과 예술적 감성에 이끌렸고, 점차 자신의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당시 마크롱은 “나는 당신과 결혼할 겁니다”라는 말을 거리낌 없이 전했다. 브리지트는 당혹스러워했지만, 그의 진심은 시간이 지날수록 분명해졌다.
사랑: 거리, 시선, 책임 속에서 자라난 관계
마크롱의 부모는 이 관계를 끊기 위해 그를 파리로 전학 보냈지만, 두 사람의 감정은 쉽게 멀어지지 않았다. 성인이 된 이후, 마크롱은 브리지트와 다시 만나 본격적인 연인 관계를 시작했고, 2007년 결국 결혼에 이른다. 이혼과 가족의 반대, 사회적 편견을 모두 감내하며 선택한 이 결합은 단순한 열정이 아닌, ‘책임을 동반한 사랑’이었다. 특히 마크롱은 정치인의 삶 속에서도 브리지트를 ‘인생의 동반자’로서 중심에 두며, 단 한 번도 그녀를 향한 신념을 바꾸지 않았다.
프랑스 사회는 왜 이 사랑을 받아들였는가? — 개인을 중심에 두는 문화
많은 이들이 묻는다. “어떻게 프랑스 사회는 대통령의 이런 이례적인 사랑을 받아들일 수 있었을까?”
그 핵심에는 프랑스 사회가 '사랑과 개인의 자유'를 매우 중요시하는 문화적 기반이 있다. 프랑스는 오랫동안 예술, 철학, 문학을 통해 '형식보다 진정성'을 중시해온 나라다. 사르트르와 보부아르의 자유로운 동반자적 사랑, 미테랑 전 대통령의 공식적인 혼외 자녀 인정 사례 등은 프랑스 사회가 도덕적 잣대보다 개인의 선택을 더 넓은 관점에서 수용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물론 마크롱과 브리지트의 관계 역시 초반에는 언론의 조롱과 대중의 관심을 한몸에 받았다. 그러나 프랑스 국민 다수는 시간이 흐르면서 그들의 관계가 단지 ‘기이한 로맨스’가 아니라는 점을 인식하게 되었다. 브리지트가 보여주는 품격, 교양, 그리고 정치적 조언자로서의 영향력은 퍼스트레이디로서의 존재감을 더했고, 마크롱의 일관된 태도 또한 진정성을 증명했다.
이처럼 프랑스는 단순히 ‘열려 있는 사회’가 아니라, 인간 개개인의 선택을 존중하며 ‘사랑’이라는 감정의 질과 책임을 공동체와 분리된 고유한 가치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극복: 사랑은 무엇을 이길 수 있는가
마크롱이 2017년 프랑스 역사상 최연소 대통령으로 선출되었을 때, 세계 언론은 그보다 24살 연상인 영부인 브리지트에 더 큰 관심을 가졌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언론과 국민 모두는 이들의 사랑이 ‘화제성’이 아닌 ‘지속성’을 가진 관계라는 사실을 인정하게 된다.
정치적 사안은 비판받을 수 있지만, 그들의 사적인 선택은 ‘스캔들’이 되지 않았다. 오히려 “사랑 앞에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이 현실에서도 가능하다는 메시지를 던졌다. 마크롱의 말처럼, "우리는 서로를 선택했고, 그 선택에 책임을 지며 살아가고 있다."
결론: 사랑이 기준을 바꿀 수 있을까
에마뉘엘 마크롱과 브리지트 트로뉴의 관계는 그 자체로 하나의 ‘프랑스적 서사’다. 그것은 규범을 넘어선 선택의 이야기이며, 감정의 진정성과 삶의 동반자로서의 깊이를 보여준다. 그들이 증명한 것은 단순한 연애가 아닌, ‘사랑은 결국 모든 것을 통과한다’는 삶의 원칙이다.
프랑스가 이 사랑을 받아들일 수 있었던 이유는, 그것이 ‘진심’이었기 때문이다. 시대는 바뀌고, 경계는 흐려진다. 하지만 그 모든 것 위에 놓인 감정의 진실은, 여전히 사람을 감동시키고 사회의 기준을 바꾸는 힘을 가진다.
만약 한국의 대통령이 24세 연상의 부인이 있다면, 그리고 그 부인은 유부녀였고 세 자녀가 있는 여성이었다면, 우리는 그 여인을 영부인으로 대할 수 있을까. 우리는 그런 개인적 생활을 수용할 수 있는 그릇은 있는가?, 깊히 생각해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