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LAFC의 응원단 The 3252, 그리고 손흥민

by 쓸모 & 쓰임새 2025. 8. 7.
반응형
SMALL

손흥민이 새로운 둥지로 선택한 LAFC는 2018년에 창단한 신생 구단이지만, 미국 메이저리그 사커(MLS)에서 가장 강력하고 독보적인 팬덤을 구축한 팀이다. 선수는 그라운드 위에서 LAFC의 상징인 '검은 장벽(The Black Wall)'이자 클럽의 심장과도 같은 존재, 'The 3252'라는 거대한 함성을 마주해야 한다. 이는 단순한 응원단을 넘어, 하나의 거대한 문화적 현상이다.

 

 

손흥민 LAFC 3252

 

 'The 3252': 이름의 기원과 정체성

 

'The 3252'라는 이름은 LAFC의 홈구장 BMO 스타디움 북쪽 스탠드의 정확한 좌석 수 '3,252석'에서 유래한다. 이 숫자는 단순한 좌석 수를 넘어, 각 숫자를 더하면 '12'(3+2+5+2=12)가 되어 '12번째 선수'를 상징하는 중의적인 의미를 가진다.

 

중요한 점은 'The 3252'가 구단이 만든 조직이 아닌, 여러 서포터 그룹들이 연합하여 결성한 '독립 서포터즈 연합(Independent Supporters Union)'이라는 사실이다. 이는 구단에 종속되지 않고 독자적인 목소리를 내며, 때로는 구단과 협력하고 때로는 비판하며 건강한 긴장 관계를 유지하는 그들만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기반이 된다.

 

반응형

'북쪽 스탠드'의 열기: 응원 방식과 문화

'The 3252'의 응원은 미국 전통 스포츠의 응원과는 궤를 완전히 달리한다. 경기 시작부터 종료 휘슬이 울릴 때까지, 90분 내내 멈추지 않고 노래하고 뛰는 것이 그들의 기본 방식이다. 북쪽 스탠드를 가득 메운 검은색과 금색의 물결, 경기 시작 전 그라운드를 뒤덮는 거대한 통천(Tifo), 그리고 골이 터질 때 피어오르는 검은 연막은 'The 3252'의 상징이다. 이는 단순히 경기를 관람하는 것을 넘어, 함성과 시각적 압박으로 상대 팀을 위축시키고 홈팀 선수들에게는 강력한 동기를 부여하려는, 경기 자체에 영향을 미치려는 능동적인 행위이다.

 

 

The 3252The 3252

 

열광의 뿌리: 미국에 이식된 유럽과 남미의 영혼

이들의 열광적인 응원 문화는 유럽의 '울트라스(Ultras)'와 남미의 '바라 브라바(Barra Brava)' 문화에 깊은 뿌리를 두고 있다. '울트라스'는 단순한 팬을 넘어 클럽의 정체성과 자신을 동일시하며, 극단적일 정도의 충성심과 열정적인 응원을 보여주는 조직적인 서포터 그룹을 지칭한다.

 

LAFC는 창단 초기부터 이러한 글로벌 축구 문화를 LA에 이식하고자 의도적으로 노력했다. 특히 전 세계 다양한 인종과 문화가 공존하는 LA의 특성, 그중에서도 축구를 삶의 일부로 여기는 중남미계 인구의 막대한 영향력은 이러한 문화가 빠르게 자리 잡는 토양이 되었다. 스페인어와 영어가 뒤섞인 응원가는 LA의 다문화적 정체성을 그대로 보여주는 증거이다.

 

다른 MLS 서포터즈와의 비교

MLS에는 시애틀 사운더스의 '에메랄드 시티 서포터즈(Emerald City Supporters)'나 포틀랜드 팀버스의 '팀버스 아미(Timbers Army)'와 같이 오랜 역사와 열정을 자랑하는 서포터즈들이 존재한다.

 

하지만 'The 3252'는 그들과 구별되는 몇 가지 뚜렷한 특징을 가진다.

 

첫째, 시각적 스케일이다. 매 경기 펼쳐지는 대규모 통천의 창의성과 완성도는 MLS 최고 수준으로 평가받는다.

 

둘째, 조직력과 독립성이다. 여러 그룹의 연합체임에도 불구하고 일사불란한 응원을 주도하며, 구단으로부터 독립적인 재정과 운영 체계를 갖추고 있다.

 

셋째, 타협하지 않는 강성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응원 구역인 북쪽 스탠드를 신성시하며, 그들만의 규칙과 질서를 강하게 유지한다. 이러한 특성은 같은 연고지의 라이벌 LA 갤럭시 서포터즈와의 '엘 트라피코(El Tráfico)' 더비에서 극명하게 드러나며, MLS의 새로운 흥행 동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손흥민은 이제 프리미어리그의 열정적인 함성과는 또 다른, 더욱 원초적이고 직접적인 형태의 지지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The 3252'의 검은 물결은 그에게 때로는 엄청난 부담으로, 때로는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든든한 버팀목으로 작용할 것이다. 그가 이 새로운 심장 소리에 어떻게 반응하고 융화되느냐가 LA에서의 성공을 가늠할 또 하나의 중요한 척도가 될 것이다.

 

LA라는 용광로: 도시 특성과 'The 3252'의 필연적 관계

 

'The 3252'의 문화는 결코 우연의 산물이 아니다. 이는 LA라는 도시의 정체성이 축구라는 매개체를 통해 발현된 필연적 결과물이다.

 

첫째, LA는 다문화의 용광로이다. 특정 인종이나 문화가 주류를 이루지 않고, 라틴, 아시안, 흑인, 백인 등 다양한 배경을 가진 이들이 각자의 정체성을 유지하며 공존한다. 'The 3252'의 스탠드에서 스페인어와 영어가 함께 울려 퍼지고, 다양한 인종이 검은색과 금색 아래 하나가 되는 모습은 LA의 축소판 그 자체이다.

 

둘째, LA는 '스펙터클(Spectacle)'과 '자기표현(Self-Expression)'의 도시이다. 할리우드의 영화 산업이 만들어내는 시각적 화려함, 그리고 거리의 예술과 음악에서 나타나는 강한 자기표현 욕구는 LA의 핵심 DNA이다. 'The 3252'가 매 경기 선보이는 거대한 통천과 조직적인 카드 섹션은 단순한 응원이 아니라, 자신들의 정체성과 힘을 과시하는 하나의 예술적 퍼포먼스이자 스펙터클이다. 그들은 경기를 관람하는 것을 넘어, 경기 경험의 일부를 직접 연출한다. 이는 LA의 문화적 맥락과 정확히 일치한다.

 

결론적으로 손흥민이 LA에서 진정한 아이콘으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단순히 많은 골을 넣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그는 자신을 '왕'으로 추대할 준비가 된 이 열정적인 공동체의 문법을 이해하고, 그들의 심장을 얻어야 한다.

 

'The 3252'의 함성을 자신의 에너지로 바꿀 수 있다면 그는 LA의 새로운 왕이 될 것이지만, 그들의 기대라는 무게에 짓눌린다면 도시의 화려함 속에 고립될 수도 있다. 그의 LA 스토리는 이제 막, 가장 뜨거운 장을 열었다.

L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