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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소한의 품격' 김기석, 깊은 인문학적 성찰과 성찬 (盛饌)

by 쓸모 & 쓰임새 2025. 6.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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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석 목사의 <최소한의 품격>을 통해 한국 개신교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살펴보며 그의 깊고 넓은 인문학적 성찰과 사회 개혁 의지를 탐구해본다. 

 

 

최소한의 품격

한국 개신교의 현주소

 

한국 개신교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과 실망은 비단 특정 개인만의 감정은 아닐 것이다. '예수천국 불신지옥'이라는 외침 속에서 느껴지는 독선과 배타성은 많은 이들을 질리게 한다. 웅장한 규모를 자랑하는 대형 교회 건물들은 물질주의의 전형처럼 비춰지고, 교회가 사유 재산처럼 상속되는 현실은 종교의 본질을 흐리게 한다. 사람을 끌어모으는 데 급급한 전도 방식은 마치 영혼 없는 마케팅 전략처럼 느껴진다.

 

목이 터져라 부르짖는 통성 기도에서 느껴지는 광신적인 분위기, 성경의 문자적 해석에만 매달리는 근본주의적 태도는 신앙의 깊이를 얕게 만든다. '헌금'을 최고의 봉사로 치부하는 세속적인 관념, 개인의 신앙을 강요하고 획일적인 믿음을 주입하려는 시도는 종교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처럼 보인다. 나아가 정치적 보수 진영, 심지어는 극우 세력과 연대하며 사회 문제에 대한 편향된 시각을 드러내는 모습은 많은 이들에게 실망을 안겨주었다. 동성애자 축복을 이유로 목사를 출교시키는 행위는 가톨릭 교황청보다도 폐쇄적이고 경직된 한국 개신교의 단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모든 개신교 성직자가 그런 것은 아니지 않느냐"는 항변은 허공에 흩어진다. 과연 그들 중 얼마나 많은 이들이 지금의 개신교가 안고 있는 문제들을 똑같이 답습하고 있지 않은가 하는 의문이 남는다. 교회가 신자 수를 명시하며 부동산 매물로 나오는 현실은 마치 종교가 하나의 '사업체'로 전락한 듯한 씁쓸함을 자아낸다. 불교나 천주교의 사제들이 종교를 넘어선 깊이 있는 인문학적 성찰을 담은 글을 꾸준히 선보이는 것과 달리, 한국 개신교 목회자들의 글은 선교나 설교를 위한 단편적인 종교 서적에 머무는 경우가 많아 아쉬움을 더한다.

 

 

 

김기석 목사

 

 

김기석 목사

 

이처럼 암울한 한국 개신교의 풍경 속에서도 한 줄기 빛처럼 다가오는 이름이 있다. 바로 김기석 목사다. 그는 앞서 언급된 한국 개신교의 문제점들을 직시하면서도, 결코 광신이나 독선에 물들지 않은 단아하고 깊이 있는 신학적 사유를 보여준다.

 

그의 책 <최소한의 품격>은 많은 이들에게 잔잔한 감동과 함께 깊은 성찰의 시간을 선사한다. '최소한'이라는 겸손한 표현 뒤에 숨겨진 '품격'이라는 묵직한 단어는, 그가 추구하는 가치가 얼마나 숭고한지 짐작하게 한다. 이는 비단 종교인으로서의 품격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한 인간으로서 마땅히 갖춰야 할 삶의 자세와 지혜를 아우르는 개념이다.

 

김기석 목사의 글은 조급함이나 흥분 없이 조근조근 사유의 실타래를 풀어낸다. 그의 글은 마치 깊은 산속의 고요한 사찰에서 듣는 법문처럼 고요하고 명상적이다. 그는 "행복은 돌이켜보면서 ‘참 좋았지’라고 느끼는 감정이다. 행복은 결과이지 목표가 아니다"라고 말하며, 행복을 맹목적으로 추구하는 현대인의 오류를 지적한다. 아우구스티누스의 '향유'와 '소유'의 구분을 통해, 소유에 집착하는 삶이 아닌 존재 자체를 즐기고 누리는 삶의 중요성을 역설한다. 하나님마저 소유의 대상이 아닌 향유의 대상이라는 그의 통찰은 종교적 대상을 향한 우리의 태도를 되돌아보게 한다.

 

희망의 등대

 

그는 날카로운 시선으로 현대 사회의 문제들을 꿰뚫어 본다. 자본주의의 폐해, 환경 문제, 고독, 그리고 종교적 근본주의의 위험성에 대해 목소리를 높인다. 특히 근본주의자들이 세상을 이분법적으로 나누고 중간을 허용하지 않는 위험성을 경고하며, 모호함을 견디지 못하고 절대적인 확신을 맹신하는 태도가 어떻게 폭력으로 이어질 수 있는지 통찰력 있게 분석한다. "자기 확신에 찬 사람들일수록 변화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그들은 제동장치가 고장 난 열차처럼 위험하다"는 그의 표현은 맹목적인 믿음이 가진 위험성을 날카롭게 지적한다.

 

김기석 목사는 신학, 철학, 문학을 넘나들며 삶의 근본적인 질문들을 던진다. 그의 글은 마치 인문학적 성찬과 같다. 그는 종교가 단순히 특정 교리나 의식을 넘어, 영원과 시간,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을 연결하고 삶을 총체적으로 볼 수 있는 눈을 제공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모든 가치가 돈으로 환원되고 사람들의 삶이 철저히 고립되는 지금이야말로 종교가 본연의 역할을 해야 할 때라는 그의 외침은 종교의 사회적 책임을 다시금 상기시킨다.

 

에고 중심의 세상에서 에코 중심의 세상으로, 탐욕의 세상에서 생명이 중심이 되는 녹색 세상으로, 적대의 세상에서 환대의 세상으로, 고립의 세상에서 연대의 세상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그의 주장은, 단순한 종교적 설교를 넘어선 사회 개혁 의지를 보여준다. 그는 기존의 권위와 중심을 해체하고 새로운 가치를 구성해야 할 전환의 시대에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명확히 제시한다.

 

속도의 강박에서 벗어나 익숙하지만 잊고 있었던 세계에 귀 기울일 때, 우리는 비로소 세상을 감싸고 있는 따뜻함을 느낄 수 있다는 그의 메시지는 바쁜 현대인의 삶에 깊은 울림을 준다. 김기석 목사는 한국 개신교에 대한 실망과 불신 속에서 방황하던 이들에게, 종교의 진정한 의미와 삶의 본질을 다시금 생각하게 하는 희망의 등대와 같다. 그는 최소한의 품격이 아닌, 최대한의 품격으로 우리 시대에 깊은 영감과 성찰을 선사하는 진정한 영적 스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