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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된 기도란 무엇일까? 비움과 수용 그리고 의탁의 기도

by 쓸모 & 쓰임새 2025. 6.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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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기도를 한다. 때로는 절박하게, 때로는 간절하게 자신의 소망을 하느님께 아뢴다. 다음은 우리가 흔히 드리는 개인적인 지향의 기도문 세 가지 예시다.

  • "저희 아이가 명문 대학에 합격하게 해주세요."
  • "이번 사업이 꼭 성공하여 큰돈을 벌게 해주세요."
  • "오랫동안 앓고 있는 이 지긋지긋한 병에서 저를 자유롭게 해주세요."

이 기도들은 지극히 개인적인 열망과 이익을 담고 있다. 인간은 나약하고 유한한 존재이기에, 자신의 행복과 안녕을 추구하는 것은 당연한 본능이다. 하지만 과연 하느님은 이러한 지극히 개인적인 기도, 심지어 개인적 영달이나 이익을 위한 기도를 어떻게 들으실까? 그리고 만약 두 사람이 서로 충돌하는 내용으로 기도한다면, 예를 들어 한 팀의 승리를 비는 두 팀의 팬들처럼, 하느님은 어떻게 판단하실까?

 

기도는 인류 역사와 함께해 온 가장 오래된 영적 행위 중 하나다. 하지만 '참된 기도'란 무엇일까? 단순히 자신의 필요와 욕구를 나열하는 것을 넘어선 기도의 본질은 어디에 있을까? 

 

개인적 기도의 한계를 넘어선 참된 기도의 의미와 하느님의 판단을 다룬다. 중보기도, 최선의 노력, 겸손, 겸양의 태도를 통해 하느님의 영광을 구하는 기도의 본질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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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된 기도란 무엇인가

 

기도의 본질적 속성: 나를 비우고 하느님을 아는 것

 

기도는 언어를 통해 이루어지기도 하지만, 침묵 속에서 깊은 묵상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기도가 인간의 내면에서 발현되는 지향성을 갖는다는 점이다. 이 지향성은 때로는 간절한 소망을 담고, 때로는 감사와 찬양을 표현하며, 때로는 깊은 성찰을 담아낸다.

 

하지만 인간의 기도가 종종 지극히 개인적이고 이기적인 욕구의 투영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은 사실이다. 우리는 시험 합격, 재물 획득, 질병 치유 등 지극히 현실적인 문제 해결을 위해 기도한다. 이러한 기도가 잘못되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인간은 나약하고 유한한 존재이기에, 절대적인 존재에 대한 의지처를 찾고자 하는 본능적인 갈망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참된 기도'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한다. 그것은 단순히 자신만을 위한 요청이 아니라, 더 큰 의미와 목적을 향한 개방성을 요구한다. 영상에서 강조하듯, 우리는 기도를 통해 나를 비우고 하느님을 알아가야 한다. 진정한 기도는 우리의 욕심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을 구하는 것이다. 하느님이 인간에게 바라는 기도는 무엇일까? 그것은 인간의 일방적인 요구가 아니라, 하느님과의 관계 속에서 이루어지는 상호작용의 언어이며, 궁극적으로는 하느님영광을 드러내는 행위이다.


하느님과 인간, 기도로 맺어지는 관계의 역설

하느님과 인간의 관계는 기도를 통해 역설적인 방식으로 맺어진다. 인간은 유한하고 하느님은 무한하다. 이러한 존재론적 간극에도 불구하고, 기도는 이 둘을 연결하는 유일한 통로가 된다.

인간의 기도: 자기 성찰과 선한 청지기의 역할

인간이 하는 기도는 표면적으로는 하느님에게 무엇인가를 요구하는 행위처럼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깊은 자기 성찰의 과정이 담겨 있다. 기도하는 순간, 우리는 자신의 욕망을 들여다보고, 자신의 한계를 인식하며, 나아가 자신이 처한 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된다.

이러한 자기 성찰은 종종 인식의 확장으로 이어진다. 영상에서 언급하듯, 우리는 이 땅에서 하느님선한 청지기로서의 삶을 살아가야 한다. 우리의 기도 역시 이 청지기적 사명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 개인적인 욕구에만 매몰되었던 기도가 점차 공동체와 세상 전체를 향한 기도로 확장되는 것이다. 이는 하느님이 바라는 기도의 방향과 맞닿아 있다. 하느님은 개개인의 안녕을 넘어, 모든 존재의 조화와 선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가진 재능, 시간, 재물 모두 하느님의 것이며, 이를 어떻게 사용할지 기도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청지기의 기도라 할 수 있다.

하느님의 판단: 충돌하는 기도와 더 큰 선

서로 충돌하는 개인적인 기도를 하느님이 어떻게 판단하실지는 매우 중요한 질문이다. 하느님은 인간처럼 편협한 시각으로 한쪽의 편을 드는 존재가 아니다. 하느님의 관심은 개인의 단편적인 이익을 넘어선 궁극적인 선과 전체의 조화에 있다.

 

예를 들어, 두 팀의 승리를 비는 기도가 충돌할 때, 하느님은 단순히 어느 한 팀을 이기게 하는 것에 집중하지 않으실 것이다. 오히려 스포츠를 통한 인간의 노력, 페어플레이 정신, 공동체 의식 함양 등 더 큰 가치에 관심을 두실 수 있다. 질병 치유를 비는 기도가 여럿 있을 때도 마찬가지다. 하느님은 개개인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으시지만, 그 아픔을 통해 개인이 성장하고, 타인을 이해하며, 궁극적으로 하느님의 뜻을 발견하는 과정을 더 중요하게 여기실 수 있다.

 

하느님의 침묵: 응답과 믿음의 시험, 그리고 영광

하느님은 때로 인간의 기도에 침묵으로 응답한다. 이 침묵은 인간에게 큰 시련이 될 수 있지만, 동시에 깊은 의미를 내포한다. 하느님의 침묵은 인간에게 스스로 답을 찾도록 유도하는 과정일 수 있다. 모든 것을 하느님에게만 의존하려는 태도를 넘어,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하며 책임지는 존재로 성장하라는 메시지일 수 있는 것이다.

 

또한, 하느님의 침묵은 인간의 믿음을 시험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즉각적인 응답이 없다고 해서 기도를 포기하는 것은 진정한 믿음이 아니다. 오히려 침묵 속에서도 꾸준히 기도하고, 하느님의 뜻을 헤아리려는 노력 자체가 믿음의 깊이를 더한다. 이 과정에서 인간은 외부적인 결과에만 집착하는 기도를 넘어, 하느님과의 관계 자체를 소중히 여기는 기도로 나아갈 수 있다. 궁극적으로 이 모든 과정은 하느님영광을 드러내는 것을 목표로 한다. 우리가 기도를 통해 하느님의 뜻을 발견하고 그 뜻에 순종할 때, 하느님은 우리의 삶을 통해 그분의 영광을 나타내신다.


참된 기도의 실천: 비움과 수용, 그리고 하느님의 영광

그렇다면 어떻게 참된 기도를 실천할 수 있을까? 이는 비움과 수용의 미학을 이해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중보기도: 타인을 위한 배려와 공감의 기도

또한 중요한 가르침은 하느님이 자신만을 위한 기도보다는 타인을 위한 기도, 즉 중보기도를 먼저 들어주신다는 점이다. 실제로 인류는 알게 모르게 서로를 위한 기도의 그물망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누군가의 배려와 공감의 기도 덕분에 재난을 피하고, 어려움을 극복하며, 희망을 얻는 경우가 많다. 이는 하느님이 이기적인 욕구 충족보다 공동체의 화합과 사랑, 그리고 모든 존재의 평화를 더욱 중요하게 여기심을 보여주는 증거이다.

 

타인을 위한 기도는 우리 자신을 넘어서는 이타심을 요구하며, 이는 하느님의 속성을 닮아가는 행위이다. 우리가 다른 이의 고통을 헤아리고 그를 위해 기도할 때, 우리의 마음은 확장되고 비로소 더 큰 사랑을 품을 수 있게 된다. 이러한 기도를 통해 개인은 영적으로 성장하고, 공동체는 더욱 단단해진다.

최선의 노력과 겸손: 자신을 다하고 하느님께 의탁하는 자세

궁극적으로 참된 기도는 자신이 이루고 싶은 것을 명확히 지향하고 그 목표를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하지만 여기서 멈춰서는 안 된다. 자신의 노력만으로 모든 것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오만을 버리고, 모든 것은 하느님께 의탁한다겸손과 겸양의 자세와 태도를 가지는 것이 핵심이다.

 

이러한 태도는 우리가 세상의 유한한 존재임을 인정하고, 무한한 지혜와 능력을 지닌 하느님의 뜻에 자신을 맡기는 것이다. 이는 무기력한 포기가 아니라,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한 후, 그 결과를 하느님의 선하신 뜻에 내어 맡기는 깊은 신뢰를 의미한다. 우리가 간절히 구하고, 그를 위해 애썼음에도 불구하고 때로 원하는 결과가 오지 않을 수 있다. 그때, 그 모든 과정과 결과를 하느님의 섭리 안에서 받아들이는 겸손이야말로 진정한 기도의 완성이다.

비움: 에고를 내려놓는 용기

참된 기도는 자신의 에고(ego)를 내려놓는 용기에서 비롯된다. 자신의 욕망과 집착을 비우고, 하느님의 뜻에 자신을 맡기는 태도이다. 이는 굴종이 아니라, 더 큰 진리와 지혜를 받아들이기 위한 자기 개방이다. 우리는 종종 자신이 원하는 대로 모든 것이 이루어지기를 바라지만, 진정한 기도는 자신의 바람이 아닌, 하느님의 지혜로운 계획이 실현되기를 구하는 것이다. 하느님을 알아가는 과정이야말로 나를 비우는 과정이다. 내 생각과 편견을 내려놓고 하느님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볼 때 비로소 진정한 기도를 드릴 수 있다.

수용: 뜻을 받아들이는 겸손

비움과 함께 중요한 것은 수용의 자세이다. 기도 후에 우리가 바라는 결과가 나타나지 않더라도, 하느님의 뜻을 겸손하게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는 무기력이 아니라, 삶의 불확실성을 인정하고, 모든 경험이 성장의 기회가 될 수 있음을 믿는 성숙한 태도이다. 때로는 고통과 시련을 통해 더 큰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수용하는 것이 참된 기도의 완성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모든 과정에서 우리는 하느님영광이 드러나기를 구해야 한다. 나의 유익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고, 이를 통해 그분의 위대함이 나타나는 것을 기뻐하는 것이 참된 기도자의 자세이다.


하느님을 알아가는 관계 지향적 기도

결론적으로 참된 기도는 단순히 인간의 개인적인 욕구를 나열하는 행위를 넘어선다. 그것은 하느님과의 관계를 인지하고, 그 관계 속에서 자신을 성찰하며, 더 넓은 의미와 목적을 추구하는 관계 지향적인 대화이다.

 

하느님은 인간이 자신에게 일방적으로 요구하기만을 바라지 않는다. 오히려 인간이 자신의 한계를 인식하고,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며, 궁극적으로는 더 큰 선을 향해 나아가기를 원한다. 하느님의 침묵은 인간에게 스스로 답을 찾고, 믿음을 굳건히 하며, 겸손하게 하느님의 뜻을 받아들이도록 이끄는 신성한 가르침이다. 이 모든 것은 우리가 하느님을 더 깊이 알아가는 과정의 일부다.

 

우리의 기도가 지극히 개인적인 차원을 넘어, 공동체와 세상 전체의 평화와 안녕을 위한 중보기도로 확장될 때, 그리고 그 모든 기도의 궁극적인 목표가 하느님영광을 드러내는 것에 있을 때, 비로소 하느님과 인간은 진정한 기도를 통해 깊이 맺어질 수 있을 것이다. 참된 기도는 외부적인 결과를 바꾸는 마법이 아니라, 기도하는 이의 내면을 변화시키고, 하느님과의 관계를 심화시키며, 궁극적으로 하느님의 뜻과 영광을 이루는 가장 강력한 영적 행위이다. 이는 우리가 최선의 노력을 다하되 모든 것을 하느님께 의탁하는 겸손과 겸양의 태도를 가질 때 비로소 완성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