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는다. "당신은 차별하는 사람인가?" 이 말에 Yes라고 답하는 이는 과연 존재할까? 아마도 아니라고답할 것이다.
다시 묻는다. "당신은 차별 금지법 제정에 찬성하는가?" 이 말에는 No라고 답하는 이들도 다수일 것이다. 특히 개신교 신자의 경우에는 말이다. 차별금지법이란 ' 합리적인 이유 없이 성별, 장애, 나이, 인종, 종교, 성적 지향, 성별 정체성 등을 이유로 개인을 불리하게 대우하는 것을 금지하자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유독 성적 지향, 성별 정체성에 이르러서는 전 세계 어떤 나라보다 완강하게 거부한다. 성소수자들은 스스로를 이반적 (離反的)이라고 자조한다. 이 말은 일반적인 일반적 성다수자 (이렇게 쓰지는 않는다)를 비꼬는 그들만의 언어이다. 한국의 성차별법 제정 관련 외국의 사례, 제정이 10여년 동안 표류하고 있는 이유, 그리고 인간의 존엄성의 관점에서의 재해석을 다루어 본다.
목차
1. 차별금지법, 무엇을 담고 있는가: 외국의 사례
차별금지법, 혹은 평등법이라 불리는 이 법안의 핵심은 합리적인 이유 없이 성별, 장애, 나이, 인종, 종교, 성적 지향, 성별 정체성 등을 이유로 개인을 불리하게 대우하는 것을 금지하는 것이다. 이는 고용, 교육, 재화 및 용역의 공급 등 사회의 모든 영역에 적용된다.
이미 세계의 많은 국가는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제정하여 운용하고 있다.
영국은 2010년 '평등법(Equality Act)'을 제정하여 9가지 차별금지 사유(나이, 장애, 성전환, 혼인 및 동성 파트너십, 임신 및 출산, 인종, 종교 또는 신념, 성별, 성적 지향)를 명시하고, 이에 근거한 직접차별, 간접차별, 괴롭힘, 보복 행위 등을 포괄적으로 금지한다.
캐나다는 1977년 '인권법(Canadian Human Rights Act)'을 통해 인종, 국적, 민족, 피부색, 종교, 나이, 성별, 성적 지향, 성별 정체성, 혼인 여부, 가족 형태, 장애, 유전적 특성, 유죄 판결 기록 등을 이유로 한 차별을 금지한다. 특히 캐나다 인권위원회(Canadian Human Rights Commission)는 차별 사건을 조사하고 해결하는 강력한 권한을 가진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은 아파르트헤이트라는 극심한 인종차별의 역사를 딛고 2000년에 '평등 증진 및 불공정 차별 방지법'을 제정했다. 이 법은 인종, 성별, 임신, 혼인 여부, 민족 또는 사회적 출신, 피부색, 성적 지향, 나이, 장애, 종교, 양심, 신념, 문화, 언어, 출생 등 20가지가 넘는 차별금지 사유를 열거하며 세계에서 가장 포괄적인 차별금지법 중 하나로 꼽힌다.
이처럼 해외 사례들은 차별금지법이 특정 이념의 산물이 아니라, 인권이라는 보편적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기본적인 법적 장치임을 보여준다.
2. 빗장 걸린 평등: 한국에서 차별금지법이 가로막히는 이유
유엔(UN)을 비롯한 국제사회가 수차례 권고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차별금지법 제정은 2007년 처음 발의된 이래 계속해서 좌절되고 있다. 가장 큰 반대 목소리는 일부 개신교계를 중심으로 터져 나온다.
이들의 반대 논리는 크게 두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성적 지향'과 '성별 정체성'을 차별금지 사유에 포함하는 것이 동성애를 조장하고 건강한 가정 윤리를 파괴한다는 주장이다. 이는 교리적 해석에 기반한 신념 체계와 깊이 연관되어 있다. 둘째, 차별금지법이 제정되면 동성애에 대한 비판적 표현이 '혐오 표현'으로 처벌받게 되어 종교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가 억압될 것이라는 우려이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몇 가지 중요한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
차별금지법은 개인의 생각이나 신념 자체를 처벌하는 법이 아니다. 차별이라는 '행위'를 규제하는 것이다. 즉, 동성애에 대해 비판적인 설교를 하거나 개인적인 신념을 표현하는 것 자체가 법적 처벌의 대상이 되지는 않는다. 다만, 그 신념을 이유로 특정인을 고용에서 배제하거나 서비스를 거부하는 등 구체적인 불이익을 주는 행위가 금지될 뿐이다. 이는 이미 차별금지법을 시행하고 있는 수많은 국가의 사례에서 확인된다. 오히려 자유는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허용되는 것이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이다.
3. 신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인간의 판단
일부 종교계가 차별금지법을 반대하는 근저에는 '신을 대신하여 인간이 인간을 심판하려는가'라는 질문이 아닌, '자신들의 교리적 잣대로 타인의 삶을 재단하고 심판하려는 경향'이 존재한다. 특정 성경 구절을 문자적으로 해석하여 동성애를 '죄'로 규정하고, 이를 근거로 성소수자를 차별하고 사회에서 배제하는 것을 정당화하는 것이다.
이는 종교가 가진 본래의 사랑과 포용의 가치와도 충돌한다. 역사적으로 종교의 이름 아래 수많은 차별과 폭력이 자행되었음을 우리는 기억한다. 특정 집단을 '죄인'으로 낙인찍고 사회적 차별을 정당화하는 것은, 결국 또 다른 형태의 폭력을 낳을 뿐이다. 신앙은 개인의 내면에서 완성되는 것이며, 그 신념을 타인에게 강요하고 사회적 차별의 근거로 삼는 순간, 그것은 더 이상 신앙이 아닌 폭력이 될 수 있다.
4. 차별금지법, 갈등이 아닌 공존을 위한 약속
차별금지법에 대한 바람직한 시각은 '특혜'가 아닌 '인권'의 관점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이 법은 성소수자만을 위한 법이 아니다. 우리 사회에는 성별, 장애, 나이, 학력, 출신 지역 등 수많은 이유로 차별을 경험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차별금지법은 이 모든 사회적 약자들이 부당한 차별 없이 동등한 기회를 보장받고, 자신의 존엄성을 지키며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최소한의 사회적 약속이다.
물론, 법 제정 과정에서 사회적 합의는 중요하다. 반대 측이 우려하는 '표현의 자유' 위축 가능성에 대해서는 법안의 내용을 더욱 정교하게 다듬고, 차별의 개념과 판단 기준을 명확히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혐오 표현과 건전한 비판을 구분하는 사회적 논의 역시 활발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논의가 '차별해도 된다'는 전제하에서 이루어져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5.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성 정체성과 인간의 존엄성
'성소수자들의 잘못인가, 성다수자의 폭거인가?'라는 질문은 문제의 본질을 흐린다. 개인의 성적 지향이나 성별 정체성은 선택이나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다. 수많은 과학적 연구가 이는 선천적인 요인에 의해 결정되는 자연스러운 특성임을 보여준다. 이를 '잘못'이라고 규정하는 것 자체가 이미 차별적인 시선이다.
문제는 개인이 가진 고유한 특성을 인정하지 않고, 다수의 기준과 다르다는 이유로 혐오하고 배제하는 사회 구조와 문화, 즉 '성다수자의 폭거'에 있다. 취향과 성 정체성은 개인의 잘못이 될 수 없다. 우리 사회가 물어야 할 질문은 '누가 잘못했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모든 사람이 자신의 모습 그대로 존중받으며 살아가는 사회를 만들 수 있는가'이다.
차별금지법 제정은 그 질문에 대한 우리 사회의 대답이 될 것이다. 평등을 향한 길은 결코 쉽지 않다. 그러나 더 많은 사람이 차별이 아닌 존중을, 배제가 아닌 공존을 선택할 때, 우리는 비로소 더 성숙한 사회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아마도 신은 이렇게 말씀하시지 않을까.
"너희 이놈들아, 왜 월권 행위를 하려고 하느냐. 심판은 나의 고유 권한이다. 너희들부터 사람처럼 살도록 하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