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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 강사 전한길, 그는 왜 극우의 아이콘이 되었나? 강의실에서 광장으로, '전한길 현상'을 말하다

by 쓸모 & 쓰임새 2025. 8.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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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공시생(공무원 시험 준비생)의 아이돌'로 불리던 인물이 이제는 정치적 논쟁의 중심에 서 있다. 한국사 1타 강사 전한길의 이야기이다. 그의 이름 앞에는 이제 '강사'라는 직함만큼이나 '극우 보수의 아이콘'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한 명의 교육자가 어떻게 이토록 강력한 정치적 상징이 되었는지, 그 과정과 배경을 차분히 분석하는 것은 우리 사회의 단면을 이해하는 중요한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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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한길의 이중성

 

 

학원가의 슈퍼스타, 그의 시작

 

경북대학교 지리학과를 졸업하고 교육대학원에서 지리교육 석사, 사학과 석사 과정을 수료한 인물이다. 그의 출발은 여느 강사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교직을 거쳐 EBS 강사로 이름을 알렸고, 이후 공무원 수험 시장에 뛰어들어 이른바 '대박'을 터뜨렸다. 그의 성공 비결은 명확했다. 방대한 한국사의 핵심만 압축한 '필기노트'는 수험생들에게 바이블로 통했고, 특유의 카리스마와 직설적인 강의 스타일은 졸음과 싸우는 수험생들을 화면 앞으로 끌어당기는 강력한 무기였다. 그는 단순한 지식 전달자를 넘어, 힘든 수험 생활의 동기 부여가이자 멘토로서의 역할을 자처하며 막강한 팬덤을 구축했다.

 

강의실에서 광장으로, 극우의 아이콘이 되다

그의 변곡점은 강의실 안에서 시작된 정치적 발언들이 유튜브라는 확성기를 통해 증폭되면서 나타났다. 그는 이전 정부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기 시작했으며, 특정 정치 세력을 '종북 주사파' 등으로 규정하며 이념적 공세를 펼쳤다. 이러한 발언은 그의 주 수강생 층을 넘어 보수 성향의 대중에게 강력하게 소구되었다. 과거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활동 이력까지 거론되며 그의 '전향'은 더욱 극적인 서사로 받아들여졌다. 그는 자신의 발언이 '상식'과 '애국'에 기반한 것이라 주장했고, 이는 기존 정치권에 대한 불신이 팽배한 상황에서 더 큰 설득력을 얻었다.

 

 

성공 신화'와 '자기 확신': 전한길 서사의 심리적 기원

전한길을 이해하기 위한 첫 번째 열쇠는 그의 압도적인 '성공 서사'이다. 그는 스스로를 "25억 빚더미에서 일어난 사람"으로 규정하며, 자신의 성공이 오롯이 치열한 노력과 올바른 방법론의 결과물임을 끊임없이 강조한다. 이 성공 신화는 두 가지 중요한 심리적 기제를 낳는다.

 

한 개인의 서사가 시대의 정서와 만나 폭발력을 가질 때, 우리는 그것을 '현상'이라 부른다. 한국사 강사 전한길은 바로 그러한 현상의 중심에 있다. 25억의 빚을 딛고 일어선 성공 신화의 주인공에서, 이제는 한국 사회의 이념적 균열을 상징하는 극우 보수의 아이콘으로 자리 잡았다. 그의 변신은 단순한 '전향'이 아니다. 이는 한 개인이 구축한 성공의 논리가 어떻게 세상을 해석하는 유일한 잣대가 되고, 종국에는 현실마저 재구성하는 극단적 신념으로 진화하는가에 대한 중요한 사례 연구이다.

 

첫째는 '세상에 대한 단순화된 모델'이다. 즉, '노력하면 성공하고, 실패는 노력이 부족하거나 방법이 틀렸기 때문'이라는 명쾌한 인과율이다. 수험생들에게는 이것이 강력한 동기부여가 된다.

 

둘째는 이를 통해 구축된 '강력한 자기 확신'이다. 자신의 방법론으로 인생의 가장 큰 위기를 극복했기에, 그의 세계관 안에서 그는 '틀릴 수 없는 존재'가 된다. 정치·사회 현상을 바라보는 시각 역시 이러한 자기 확신 위에 세워진다. 국가의 문제 역시 개인의 성공 방정식과 마찬가지로, '올바른 정신'과 '상식적인 방법'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신념으로 이어진다.

 

전한길

 

우리'와 '적'의 이분법: 그의 언어와 수사법 분석

 

그의 정치적 언어가 힘을 얻는 핵심은  '선명한 이분법'이다. 그의 세계는 철저히 '우리'와 '적'으로 나뉜다. '우리'는 대한민국을 걱정하는 애국 시민, 상식을 가진 국민,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는 세력이다. 반면 '적'은 단순히 정책적 반대자가 아니다. 그는 이전 정부와 특정 정치 세력을 '종북 주사파', '반국가 세력', '대한민국의 암적인 존재' 와 같은 극단적 언어로 규정한다. 이는 정치적 견해 차이를 국가의 존립을 위협하는 '선악의 대결' 구도로 격상시키는 효과를 낳는다.

 

그의 수사법은 복잡한 사회 문제를 '도덕적 타락'의 문제로 환원시킨다. 부동산 정책의 실패는 복합적인 경제 요인 분석이 아니라 '무능하고 사악한 주사파 정권의 고의적 실책'으로 단순화된다. 이러한 프레임은 지지자들에게 명쾌한 분노의 대상을 제공하고, 복잡한 현실을 이해해야 하는 지적 부담을 덜어준다. "정신 똑바로 박힌 사람이라면", "상식이 있다면"과 같은 전제를 반복적으로 사용하는 것은, 자신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을 비상식적이고 비이성적인 존재로 낙인찍는 효과적인 장치이다. 이는 단순한 비판이 아닌, 상대를 공동체에서 축출해야 할 '타자(他者)'로 만드는 과정이다.

 

전한길

 

논란의 중심, '부정선거론'을 말하다

 

전한길을 극우 보수의 확실한 아이콘으로 각인시킨 사건은 '4.15 부정선거' 의혹 제기이다. 그는 공개적인 자리와 개인 방송을 통해 사전투표 조작 가능성 등 부정선거론을 적극적으로 주장했다. 이는 선거 결과에 대한 불복과 시스템에 대한 불신을 근간으로 하는 담론으로, 그를 주류 보수와도 구별되는 강경 보수 진영의 핵심 스피커로 위치시켰다. 선관위와 사법부를 비판하며 제도권 전체에 대한 불신을 표출하는 그의 모습은, 그를 지지하는 이들에게는 '투사'로, 비판하는 이들에게는 '음모론자'로 비치게 만드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4.15 부정선거론'은 이러한 그의 신념 체계가 도달한 논리적 귀결점이다. '우리'와 '적'의 구도가 선명하고, '적'이 국가를 파괴하려는 사악한 존재라면, 그들이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선거를 조작하는 것은 그 세계관 안에서는 지극히 합리적인 추론이 된다. 그에게 부정선거론은 음모론적 사실관계의 문제가 아니라, 자신이 구축해온 신념 체계를 방어하고 완성하는 마지막 퍼즐 조각이다. 통계적 오류나 절차적 문제를 지적하는 것을 넘어, "나라를 지키기 위한 외침"으로 스스로의 행위를 정당화한다. 이는 그의 신념이 이제 외부의 객관적 사실에 의해 수정될 수 있는 단계를 넘어, 현실을 자신의 신념에 맞춰 해석하는 단계에 이르렀음을 보여주는 명백한 증거이다.

 

현상으로서의 전한길: 대중은 왜 그의 언어에 열광하는가?

 

전한길 현상은 단지 한 개인의 특수성으로만 설명될 수 없다. 그의 성공은 우리 사회의 깊은 불안과 불신을 먹고 자란다. 기성 정치와 주류 언론에 대한 깊은 불신, 양극화로 인한 소통의 단절, 그리고 복잡한 세상 속에서 명쾌한 해답과 강력한 리더십을 갈망하는 대중적 심리가 그의 배경이다. 그는 "여러분이 하고 싶은 말을 내가 대신 해준다"고 말한다. 그의 극단적인 언어는 지지자들에게 억눌렸던 분노를 표출하는 '카타르시스'를 제공하고, 거대한 '적'에 맞서 싸우는 공동체의 일원이라는 소속감과 정체성을 부여한다. 결국 전한길 현상은, 우리 사회가 이성과 합리적 토론보다 신념과 감정의 정치가 더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시대로 접어들었음을 보여주는 하나의 슬픈 자화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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