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여주시에 조금 특별한 교정시설이 있다. 국가가 아닌 민간이 운영하는, 한국 유일의 민영교도소 ‘소망교도소’다. ‘교도소’라는 단어가 주는 서늘한 무게감에 ‘민간’이라는 낯선 수식이 붙었을 때, 시민들은 고개를 갸웃거린다. 국가의 고유 권한인 형벌 집행과 교정·교화를 과연 민간의 손에 맡겨도 되는 것일까? 2010년 12월 문을 연 소망교도소를 통해 민영교도소의 개념부터 현실적 과제까지, 그 속살을 객관적인 시선으로 들여다본다.
목차
민영교도소, 무엇이 다른가?
민영교도소는 국가(법무부)와의 계약을 통해 민간 조직이 교정시설의 운영 전부 또는 일부를 위탁받아 운영하는 시설을 말한다. 국가가 직접 모든 교도소를 운영하는 ‘국영주의’에서 벗어나, 민간의 자율성과 효율성을 교정 행정에 접목하려는 시도다.
그렇다면 일반 국영 교도소와는 무엇이 다를까? 가장 큰 차이점은 운영 주체와 철학에 있다. 국영 교도소는 법무부 소속 교도관(공무원)이 통일된 법규와 지침에 따라 운영한다. 반면 소망교도소는 기독교 단체인 ‘아가페 재단’이 운영하며, 직원은 공무원이 아닌 재단 소속의 민간인이다.
이러한 차이는 교정 프로그램의 내용으로 이어진다. 소망교도소는 인성 교육, 심리 치료, 중독 회복 프로그램 등 수용자 개개인의 변화에 초점을 맞춘 재사회화 프로그램을 국영 교도소보다 훨씬 다채롭고 집중적으로 운영한다. 수용 인원 대비 직원 비율이 높아 보다 세심한 관리가 가능하다는 점도 특징이다. 물론, 수용자의 형 집행, 가석방, 징벌 등 핵심적인 법 집행 권한은 국가가 최종적으로 통제하고 감독한다. 민간은 어디까지나 ‘운영’을 위탁받았을 뿐, 사법 권력 그 자체를 이양받은 것은 아니다.
왜 ‘민간’의 손을 빌려야 했을까?
정부의 교정시설만으로는 늘어나는 수용자를 감당하기 어렵고, 획일적인 관리로는 재범률을 낮추는 데 한계가 있다는 목소리가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민영교도소의 필요성은 바로 이 지점에서 출발한다.
첫째, 교정 프로그램의 다양화와 전문화다. 민간의 창의성과 전문성을 활용해 기존 국영 시스템이 시도하기 어려웠던 새로운 교화 모델을 실험하고, 그 성공 사례를 전체 교정 행정에 확산시킬 수 있다. 소망교도소의 낮은 재범률(약 8% 내외로, 전체 교도소 평균의 1/3 수준)은 이러한 실험의 긍정적 가능성을 시사한다.
둘째, 운영의 효율성이다. 정부의 직접 운영에 비해 인건비 등 고정 비용을 절감하고, 민간의 유연한 조직 운영을 통해 예산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는 기대가 있다.
하지만 이러한 필요성 뒤에는 날카로운 질문이 뒤따른다. 과연 민간이 공공의 영역인 ‘교정’을 잘 해낼 수 있을까? 교도소는 단순한 수용 시설이 아니라 법 집행의 최전선이다. 민간 운영 시 발생할 수 있는 보안 문제, 수용자 인권 침해, 그리고 공공성 약화에 대한 우려는 당연한 과제다. 특히 이윤 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영리 법인이 운영에 뛰어들 경우, 비용 절감을 위해 교도관 수를 줄이거나 재사회화 프로그램을 부실하게 운영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해외의 사례와 소망교도소의 현주소
민영교도소는 1980년대 미국에서 처음 시작되어 영국, 호주 등으로 확산됐다. 특히 미국은 가장 많은 민영교도소를 운영하고 있지만, 높은 수감률, 열악한 처우, 잦은 폭동 등 부작용이 끊임없이 보고되며 ‘교정의 민영화’가 과연 옳은 방향인지에 대한 사회적 논쟁이 뜨겁다. 비용 절감 효과도 기대에 미치지 못하며, 오히려 재범률이 국영 교도소보다 높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이러한 해외 사례와 비교할 때, 소망교도소는 몇 가지 중요한 차이점을 가진다. 먼저 비영리 법인이 운영한다는 점, 그리고 엄격한 입소 조건을 통해 교화 가능성이 높은 수용자를 선별한다는 점이다.
소망교도소의 입소 조건은 다음과 같다.
대상: 징역 1년 이상 7년 이하의 형이 확정된 성인 남성 수형자
잔여 형기: 입소일 기준 남은 형기가 1년 이상인 자
제외 대상: 마약류, 조직폭력 등 특정 범죄 사범
필수 조건: 수용자 본인의 자발적인 동의
소망교도소는 '대학 기숙사', 일반 교도소는 '낡은 군대 내무반'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시설의 목표 자체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소망교도소는 재사회화와 심리적 안정을, 일반 교도소는 통제와 관리를 최우선으로 고려해 설계되었습니다.
생활 공간: '생활관' vs '감방'
가장 큰 차이는 수용자들이 잠자고 생활하는 공간에서 나타납니다.
소망교도소: '감방'이라는 용어 대신 '생활관'이라는 말을 씁니다. 약 4~6명이 한 방을 사용하며, 방 안에 화장실과 샤워 시설이 함께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일반 교도소보다 1인당 생활 면적이 넓고, 차가운 쇠창살보다는 일반 건물과 비슷한 창문으로 되어 있어 심리적 압박감이 덜합니다. 전체적인 분위기가 교도소보다는 기숙사나 연수원에 가깝습니다.
일반 교도소: 많은 시설이 여전히 여러 명이 함께 생활하는 '혼거실' 위주로 운영됩니다. 특히 오래된 교도소의 경우 7~9명이 7평 남짓한 공간에서 생활하기도 합니다. 한국 교정시설의 고질적인 과밀수용 문제(수용률 110~120% 상회)로 인해 규정된 1인당 면적을 확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생활 환경이 매우 열악할 수 있습니다. 화장실이나 세면 시설도 정해진 시간에만 공동으로 이용해야 하는 등 통제가 엄격합니다.
부대 시설: '교육 중심' vs '기본 유지'
생활 공간 외 시설에서도 지향점의 차이가 드러납니다.
소망교도소: 교육과 변화를 목표로 하기에 관련 시설이 잘 갖춰져 있습니다. 규모가 큰 도서관, 컴퓨터 교육실, 바리스타나 제과제빵 같은 직업 훈련 시설, 강연이나 공연을 위한 대강당, 전문적인 심리 상담실 등이 운영의 핵심을 이룹니다.
일반 교도소: 물론 일반 교도소에도 도서관, 작업장, 종교실 등 기본적인 시설은 모두 있습니다. 하지만 많은 수용자를 한 번에 관리해야 하므로 시설 이용에 제약이 많고, 예산과 공간의 한계로 인해 시설이 노후화된 경우도 있습니다.
문화와 분위기: '학생과 선생' vs '수용자와 교도관'
눈에 보이지 않는 환경의 차이가 어쩌면 가장 클 수 있습니다.
소망교도소: 직원들을 '선생님', 수용자들을 '학생' 또는 '형제님'으로 부릅니다. 수직적이고 권위적인 관계에서 벗어나 인격적인 관계와 멘토링을 통해 변화를 유도하려는 문화가 깔려 있습니다.
일반 교도소: '교도관'과 '수용자'라는 명확한 호칭에서 알 수 있듯, 법 집행을 위한 권위와 통제가 관계의 기본을 이룹니다. 이는 안전 유지를 위해 필수적이지만, 수용자 입장에서는 심리적 위축감과 비인격적인 대우를 느낄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기 쉽습니다.
결론적으로 소망교도소의 환경은 '변화 가능성을 믿는 교육 현장'으로, 일반 교도소의 환경은 '사회를 보호하기 위한 격리 및 관리 시설'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해외의 경고, ‘돈’이 개입될 때
민영교도소의 역사는 경고의 메시지를 함께 품고 있다. 1980년대 미국에서 시작된 민영화의 바람은 교정 행정을 ‘돈벌이’의 수단으로 전락시킬 수 있다는 우려를 낳았다. 일부 영리 목적의 민영교도소는 비용 절감을 위해 교도관 수를 줄이고, 수용자 처우를 악화시켜 폭동과 인권 침해의 온상이 되기도 했다. ‘교정 서비스’의 질은 떨어지고 재범률은 오히려 높아지는 최악의 결과가 나타난 것이다.
이것이 소망교도소의 운영 주체가 ‘비영리 법인’이라는 점, 그리고 국가가 국영 교도소 운영비의 90% 수준에서 예산을 지원하고 철저히 관리 감독한다는 ‘계약 조건’이 중요한 이유다. 민간의 창의성과 자율성을 활용하되, 교정의 공공성을 훼손하지 않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다.
우리가 던져야 할 진짜 질문
소망교도소의 낮은 재범률은 ‘민영’이 ‘국영’보다 무조건 우월하다는 증거는 아닐 것이다. 앞서 말했듯, 변화의 의지가 있는 수용자를 선별했다는 ‘통제된 환경’의 결과일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이 실험은 우리 사회의 교정 시스템 전체에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왜 모든 수용자를 잠재적 위험인물로만 간주하고 획일적으로 관리하고 있는가?” 변화의 의지가 있는 수용자에게는 더 많은 기회와 집중적인 교육을 제공하고, 그렇지 않은 수용자에게는 그에 맞는 관리와 감독을 적용하는 ‘분리-맞춤형 교정’이 더 효과적이지 않을까?
결국 소망교도소는 ‘민영화’라는 해답지가 아니라, ‘교정의 본질’을 묻는 질문지다. 한 해 수만 명이 드나드는 교도소의 문. 그 문을 나서는 이들의 손에 새로운 삶의 기회를 쥐여줄 것인가, 아니면 또 다른 범죄의 씨앗을 들려 보낼 것인가. 소망교도소의 조용한 실험은, 이제 국가가 답해야 할 차례라고 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