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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평> '사랑의 뒷면' 정현우, 사랑이라는 이름의 뒷면

by 쓸모 & 쓰임새 2025. 7.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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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외 참회

 

 

 

 

사랑의 뒷면

                                          정현우

 

참외를 먹다 벌레 먹은

안쪽을 물었습니다.

이런 슬픔은 배우고 싶지 않습니다.

뒤돌아선 그 사람을 불러 세워

함께 뱉어내자고 말했는데

아직 남겨진 참외를 바라보다가

참회라는 말을 꿀꺽 삼키다가

내게 뒷모습을 보여주는 것

먼 사람의 뒷모습은

눈을 자꾸만 감게 하는지

나를 완벽히 도려내는지

사랑에도 뒷면이 있다면

뒷문을 열고 들어가 묻고 싶었습니다.

단맛이 났던 여름이 끝나고

익을수록 속이 빈

그것이 입가에서 끈적일 때

사랑이라 믿어도 되냐고

나는 참외 한입을

꽉 베어 물었습니다.

 

<이건 다만 사랑의 습관> 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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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외를 먹다 벌레 먹은 안쪽을 물었습니다. 한 입 베어 물었을 뿐인데, 혀끝에 퍼지는 건 달콤함이 아니라 당혹감입니다. 정현우 시인의 시 「사랑의 뒷면」은 이처럼 아주 평범한 일상에서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 안쪽에서 끌어낸 것은 사랑의 상처, 회한, 침묵, 무엇보다도 말해지지 않은 감정의 진실입니다.

 

 

 참외, 그리고 참회

 

시인은 참외를 먹는 순간, 뜻밖의 벌레 먹은 부분을 만나고 맙니다.
그때 느끼는 감정은 당황스러움, 혹은 거부감이겠지요.
하지만 시인은 이 감각에서 곧장 ‘참회’로 감정이 전이됩니다.
왜일까요? 참외와 참회.소리의 유사성은 단지 언어 유희가 아니라,
단맛 속에 숨어 있던 씁쓸한 기억,
사랑이라 믿었던 순간이 통째로 의심되는 감정을 고스란히 드러냅니다.

달콤했던 여름은 끝났고,
익을수록 속이 빈 참외처럼,
그 사랑도 알맹이를 잃어버린 채 껍질만 남은 듯합니다.

 

 

 

“함께 뱉어내자”고 말했지만

 

시인은 ‘그 사람’을 불러 세워 함께 뱉어내자고 말합니다.
아마도 그 순간의 슬픔이나 상처,
혹은 그 사랑의 쓸쓸한 결말을 함께 받아들이자는 뜻이었을 겁니다.
그러나 그는 아무 말도 없이 뒷모습만 남긴 채 멀어집니다.
남겨진 참외를 바라보다가.
그는 추억의 단맛에 연연하며,
이미 상한 감정을 직면하지 않기로 선택한 듯합니다.

결국 시인은 혼자 남아,
"참회라는 말을 꿀꺽 삼킵니다."
사랑의 끝에서, 책임도, 기억도, 고통도 혼자서 감내하는 모습입니다.

 

 

 

사랑의 뒷문을 열고 들어가 묻고 싶었다

 

"사랑에도 뒷면이 있다면 / 뒷문을 열고 들어가 묻고 싶었습니다."
이 대목은 참으로 절절합니다.
사랑의 표면은 아름답고, 찬란하고, 환희에 가득 차 있지만
그 뒷면에는 말해지지 않은 진심,
도려낸 감정, 떠난 이유 같은 것들이 숨어 있습니다.

시인은 그 뒷문을 열고 들어가 묻고 싶었습니다.
"왜였는지, 정말 사랑이었는지."

하지만 그 문은 닫혀 있고,
그 사람의 뒷모습만이 남아 있습니다.
사랑은 끝났고, 진실은 침묵 속에 묻혀 버린 셈입니다.

 

 

 

 “사랑이라 믿어도 되냐고”

 

이 시는 마지막까지 질문으로 맺어집니다.
“사랑이라 믿어도 되냐고.”

시인의 질문은 마치 우리 모두의 것 같습니다.
관계가 끝난 뒤, 그 시간들이 진짜였는지 확인받고 싶어 하는 마음.
애정과 상처가 뒤섞인 그 기억이
사랑이었는지, 착각이었는지, 혹은 독이었는지를 묻는 마음.

결국 시인은 다시 한 번 참외를 ‘꽉 베어’ 뭅니다.
단맛이 남았든, 씁쓸함이 남았든
사랑의 모든 기억을 받아들이기로 선택한 순간입니다.


정현우 시인의 「사랑의 뒷면」은사랑이라는 한 조각 과일에 숨겨진 이면을 꺼내 보여줍니다.그 안에 있는 벌레 먹은 슬픔, 삼켜버린 참회,그리고 끝내 말하지 못한 물음들.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뒷모습을 기억하며,그 뒷문을 열지 못한 채 사랑의 끝자락에서“사랑이라 믿어도 되냐”고 조용히 되묻는 존재인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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