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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타냐후의 계략: 중동의 거미줄을 직조하는 거장

by 쓸모 & 쓰임새 2025. 6.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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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조차 자신의 뜻대로 움직이게 만든 인물.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단순한 정치인을 넘어, 국제 관계의 거대한 체스판 위에서 누구보다 능숙하게 말을 움직이는 전략가이다. 그의 오랜 재임 기간 동안 이스라엘은 물론 중동 전체의 지정학적 지형은 그의 손에 의해 재편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최근, 미국이 이란의 핵시설을 직접 공격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하며 그의 '계략'은 더욱 선명하게 드러났다. 국제법 위반 논란 속에서도 미국을 움직인 그의 힘은 과연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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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네타냐후의 성장과 배경: 엘리트주의와 강경 보수의 탄생

 

네타냐후의 정치적 행보는 그의 독특한 성장 배경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1949년 텔아비브에서 태어난 그는 이스라엘 건국의 주역 중 한 명인 벤지온 네타냐후의 아들이다. 그의 아버지 벤지온은 시온주의의 대부 중 한 명이자 유대 민족주의의 열렬한 옹호자였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네타냐후는 자연스럽게 이스라엘의 안보와 유대인의 정체성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내면화했다.

 

그의 성장 과정은 미국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고등학교와 대학을 미국에서 졸업하며 매사추세츠 공과대학(MIT)에서 건축학 학사와 경영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그는 영어에 능통하며 서구 문화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국제 무대에서 탁월한 소통 능력을 보여왔다. 또한, 이스라엘 방위군(IDF)의 특수부대인 사이렛 마트칼에서 복무하며 실전 경험을 쌓았고, 이는 그의 강경한 안보관을 형성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러한 배경은 그가 이스라엘의 안보를 최우선으로 여기면서도, 동시에 국제 사회의 역학을 꿰뚫어보는 시야를 갖추게 했다.

 

2. 정치적 위상: '미스터 안보'를 넘어선 정치의 마술사

 

네타냐후는 1982년 워싱턴 주재 이스라엘 대사관 부대사로 외교 무대에 데뷔한 이래, 이스라엘의 외교 및 안보 정책에 깊이 관여해왔다. 1988년 크네세트(이스라엘 의회)에 입성한 후 1996년 최연소 총리로 취임하며 이스라엘 정치의 전면에 나섰다. 이후 잠시 야인으로 물러났으나, 2009년 총리로 재집권하여 현재까지 이스라엘 역사상 최장기 총리 재임 기록을 경신하고 있다.

 

그의 정치적 위상은 단순히 '미스터 안보'라는 별명으로 설명할 수 없다. 그는 아랍-이스라엘 분쟁에 대한 강경한 입장을 고수하면서도, 동시에 경제 자유화와 첨단 기술 산업 육성을 통해 이스라엘의 경제 성장을 견인했다. 그는 리쿠드당을 이끌며 우파 연합을 구축하고, 끊임없이 변화하는 국내외 정치 환경 속에서 자신의 입지를 굳건히 다졌다. 이 과정에서 그는 특유의 설득력과 위기 관리 능력을 발휘하며 수많은 정치적 난관을 헤쳐 나갔다. 특히 서방 언론과의 소통에 능숙하여 이스라엘의 입장을 국제사회에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데 탁월한 능력을 보여주었다.

 

3. 미국과의 관계 설정: 설득과 압박의 이중주, 그리고 결정적 행동

 

네타냐후의 계략이 가장 빛을 발하는 지점은 바로 미국과의 관계 설정이다. 그는 미국의 전폭적인 지원이 이스라엘의 안보와 번영에 필수적임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다. 따라서 그는 미국의 역대 대통령들을 상대로 이스라엘의 이익을 관철시키기 위해 끊임없이 설득하고 때로는 압박하는 전략을 구사했다.

 

그의 전략은 단순히 '유대인 로비'라는 단순한 공식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물론 미국 내 유대인 커뮤니티의 정치적 영향력은 무시할 수 없는 요소이지만, 네타냐후는 그 이상의 교묘한 수단을 사용한다. 그는 미국의 공화당과 민주당 양측에 걸쳐 폭넓은 인맥을 형성하고, 특히 미국의 보수 기독교 복음주의 세력과의 연대를 강화했다. 이들은 이스라엘에 대한 강력한 지지를 성경적 예언의 성취로 여기는 경향이 있어, 네타냐후에게는 든든한 정치적 기반이 되었다.

 

또한, 그는 이스라엘의 첨단 기술력과 정보력을 미국에 제공하며 상호 의존적인 관계를 구축했다. 이스라엘은 중동 지역의 주요 정보국 역할을 수행하며 미국의 대테러 작전 및 정보 공유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이러한 실질적인 기여는 단순히 감정적 유대를 넘어선 전략적 필요에 의해 미국이 이스라엘을 지지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요인이 된다.

 

트럼프 행정부 시절, 네타냐후의 외교력은 정점에 달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 우선주의' 기조와 중동 정책에 대한 무지를 영리하게 활용했다. 예루살렘의 이스라엘 수도 인정, 시리아 골란고원 이스라엘 주권 인정, 그리고 '아브라함 협정'을 통한 아랍 국가들과의 관계 정상화 등은 네타냐후의 강력한 로비와 트럼프의 비정통적인 외교 방식이 결합된 결과였다.

 

그는 트럼프가 이스라엘에 대한 강력한 지지를 표명할수록 미국의 복음주의 지지자들의 표심을 얻을 수 있다는 점을 간파했고,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그리고 최근, 이스라엘이 이란 핵시설에 대한 공습을 감행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미국 또한 이란의 핵시설을 직접 타격하는 전례 없는 행동을 취했다. 이는 네타냐후의 이란에 대한 강경한 입장이 미국의 군사적 행동으로까지 이어졌음을 명확히 보여준다.

 

4. 이스라엘과 미국의 관계: 단순한 유대인의 힘을 넘어선 전략적 유대

 

이스라엘과 미국의 관계는 단순히 유대인 로비의 힘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복잡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물론 미국 내 강력한 친이스라엘 로비 단체인 미국이스라엘공공문제위원회(AIPAC) 등은 이스라엘에 대한 미국의 정책 형성에 큰 영향력을 행사한다. 하지만 양국 관계의 근저에는 훨씬 더 깊은 전략적 유대가 존재한다.

 

첫째, 이스라엘은 중동 지역에서 미국의 핵심적인 전략적 자산이다. 불안정한 중동에서 이스라엘은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유일한 국가이자, 미국의 동맹국으로서 지역 안보에 기여한다. 이스라엘은 이란의 핵 개발 저지, 급진 이슬람 테러 세력과의 전투 등 미국의 중동 정책 목표와 상당 부분 궤를 같이 한다.

 

둘째, 정보 공유 및 군사 협력은 양국 관계의 핵심이다. 이스라엘은 자체적인 뛰어난 정보력과 군사 기술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는 미국의 중동 전략에 필수적인 요소로 작용한다. 미국은 이스라엘에 막대한 군사 원조를 제공하며 최첨단 무기를 지원하는데, 이는 단순한 원조를 넘어 이스라엘의 군사적 우위를 유지하고 결과적으로 미국의 지역 안보 목표 달성에 기여하기 위함이다.

 

셋째, 가치 공유라는 측면도 중요하다. 비록 논란의 여지는 있으나, 미국은 이스라엘을 중동의 민주주의 등대이자 서구적 가치를 공유하는 국가로 인식한다. 이는 미국의 대외 정책이 단순히 이해관계만을 좇는 것이 아니라, 가치를 기반으로 한다는 정당성을 부여하는 역할을 한다.

 

이러한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미국은 이스라엘에 대한 변함없는 지지를 보내왔다. 네타냐후는 이러한 전략적, 정치적, 심리적 유대 관계를 정확히 꿰뚫고 이를 자신의 계략에 효과적으로 활용했다.

 

5. 미국은 왜 이스라엘의 요청대로 이란 핵시설을 공격했을까? 

 

미국은 2025년 6월 21일, 이란의 핵시설 3곳을 직접 타격했다고 발표했다. 이는 1979년 이란 이슬람 혁명 이후 이란 본토에 대한 미국의 첫 공격이며, 국제법 위반이라는 거센 비난에 직면했다. 이란은 이를 국제법 위반으로 규정하고 강력히 반발하며 핵 활동을 중단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네타냐후는 이란을 이스라엘의 '실존적 위협'으로 규정하고, 이란의 핵 개발을 결코 용납할 수 없다는 입장을 일관되게 표명해왔다. 그는 미국 의회와 언론을 통해 이란의 위협을 과장하고, 핵합의가 이란에 핵무기 개발의 길을 열어줄 것이라고 강력히 주장했다. 그의 이러한 주장은 미국의 보수 세력, 특히 이란을 '악의 축'으로 여기는 강경파들에게 깊이 침투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네타냐후의 주장을 상당 부분 수용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 핵합의(JCPOA)를 '최악의 거래'로 비난하며 탈퇴를 강행했고, 이후 이란에 대한 전례 없는 제재를 부과했다. 그리고 결국, 이란 핵시설에 대한 직접 공격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감행했다.

 

이는 이스라엘의 안보를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실제로는 미국의 중동 전략과 국내 정치적 고려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였다. 트럼프는 이란에 대한 강경 대응이 자신의 지지층을 결집시키는 데 효과적이라고 판단했을 수 있으며, 네타냐후는 이러한 트럼프의 정치적 계산을 영리하게 이용했다.

 

이스라엘이 먼저 이란 핵시설을 공습한 직후 미국의 공격이 이어진 점은, 양국 간의 긴밀한 협의와 네타냐후의 설득력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음을 시사한다. 미국의 이번 공격은 '예방 전쟁'의 성격을 띠며, 국제법상 자위권의 범위를 넘어선 것으로 해석될 여지가 크다. 하지만 미국은 이란의 핵 개발이 국제 안보에 심각한 위협이 된다는 명분으로 이를 정당화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네타냐후의 '계략'은 단순히 운이 좋았거나 일회성 성공이 아니다. 그는 자신의 확고한 신념, 탁월한 언어 능력과 국제 감각, 그리고 미국의 정치적 지형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장기적인 전략을 실행해왔다. 이스라엘의 안보와 번영이라는 목표 아래, 그는 미국과의 관계를 전략적으로 활용하고, 국제 여론을 조작하며,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압력을 가하는 데 능숙했다.

 

최근 미국의 이란 핵시설 공격은 그의 이러한 교묘한 '계략'이 얼마나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는지를 보여주는 가장 극명한 사례이며, 앞으로도 중동의 운명은 그의 손에 의해 상당 부분 좌우될 것임은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