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의 관세 협상이 막바지에 이르면서 한국은 긴박한 상황에 직면해 있다. 일본, 유럽연합(EU), 중국 등 주요 교역국들이 속속 협상을 타결하는 가운데, 한국은 8월 1일까지 막판 협상을 진행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러한 중대한 시점에서 산업통상자원부가 제안한 'MASGA (Make American Shipbuilding Great Again)' 전략이 미국의 조선 산업 재건 목표와 맞물려 어떻게 작용할지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MASGA'가 단순히 이론적인 제안을 넘어 실질적인 대안이 될 수 있을지, 미국 조선 산업의 현실과 한국의 경쟁력을 면밀히 분석하고 실질적인 해법을 모색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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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조선 산업 현황과 관심 분야: 재건을 향한 갈증
미국은 한때 세계 조선 산업의 강국이었으나, 현재는 그 위상이 크게 약화되었다. 상선 건조 능력은 거의 소멸되었고, 군함 건조 및 유지보수 역량 역시 쇠퇴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미국은 자국 조선 산업의 재건을 강력히 추진하고 있으며, 특히 해군 함정 및 군함 유지·정비·보수(MRO), 특수 상선 및 전략 상선단, 그리고 알래스카 자원 개발을 위한 특수 선박 분야에 집중하고 있다.
미국은 중국의 해군력 증강에 대응하여 함대 규모를 확대하고 첨단 기술 함정을 도입하려 한다. 이를 위해 2055년까지 함대 규모를 현재 296척에서 390척으로 늘리는 것을 목표로 하며, 향후 30년간 약 1600조 원의 예산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미국의 조선업계는 인력 부족, 인프라 노후화, 공급망 문제로 인해 이러한 목표 달성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따라서 노후 함정의 정비와 신규 함정의 지속적인 유지보수 역량 강화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동맹국 중 한국, 일본 등 조선 선진국과의 협력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 특히 한화오션이 필라델피아 조선소를 인수하여 군함 수리 및 건조 인프라를 확보하고 MRO 사업을 확대하는 것은 미국의 이러한 필요와 정확히 부합하는 전략적 움직임이다.
또한, 미국은 상선 건조 능력이 거의 사라진 상태이지만, 국가 안보 및 경제 안보 유지를 위해 특정 유형의 상선 건조 및 전략 상선대 확충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여기에는 LNG선, 초대형 컨테이너선, 벌크운반선, 유조선, 로로선(RORO), 다목적선, 해저케이블선, 중량물 운반선 등이 포함된다. 특히 중국 의존도를 낮추고 자국 내 운송 및 비상시 군수 물자 수송을 위한 자국 선박 건조 능력 확보에 대한 의지가 강하다. '존스법(Jones Act)'과 같은 자국 산업 보호 규정을 통해 미국에서 건조된 선박만이 미국 내 항구 간 물품 및 승객을 운송할 수 있도록 강제하고 있으며, '해양안보신탁기금' 등을 통해 조선소 및 설비 투자와 재정 인센티브를 제공하여 자국 내 선박 건조 역량 강화를 유도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 미국은 알래스카 지역의 막대한 천연가스 자원 개발을 통해 에너지 안보를 강화하고 아시아 시장으로의 LNG 수출을 다변화하려는 강력한 의지를 가지고 있다. '알래스카 LNG 프로젝트'는 64조 원 규모의 초대형 사업으로, 알래스카 북부의 가스전을 개발하여 남부 수출항까지 약 1300km에 달하는 가스관을 건설하고, 여기서 생산된 LNG를 해외로 운송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 프로젝트의 성공을 위해서는 알래스카의 혹독한 기후 조건을 견디고 얼어붙은 바다를 뚫을 수 있는 강력한 쇄빙선과 대규모 LNG 운송을 위한 LNG 운반선이 필수적이다. 미국은 자국 내 쇄빙선 건조 기술이 부족하며, LNG 운반선 건조 경험도 전무한 상태이다.
한국 조선업의 경쟁력: 미국의 갈증을 해소할 열쇠
한국은 세계 최고 수준의 조선 기술력과 생산 능력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는 미국의 조선 산업 재건에 실질적인 기여를 할 수 있는 강력한 경쟁력으로 작용한다.
첫째, 한국 조선업은 첨단 기술 및 설계 역량 면에서 독보적이다. LNG선, 초대형 컨테이너선 등 고부가가치 선박은 물론 쇄빙선 등 특수 선박 건조에 필요한 설계, 용접, 자동화 기술 등 전반적인 조선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특히 스마트 조선소 구축 및 디지털화된 생산 공정 관리 시스템은 미국의 생산성 향상에 크게 기여할 수 있다. 이는 단순히 기술 전수를 넘어 공정 효율화와 생산 기간 단축으로 이어질 수 있는 핵심 역량이다.
둘째, 한국 기업은 투자 및 인프라 현대화를 통해 미국의 노후화된 조선소 인프라를 개선하는 데 직접적으로 기여할 수 있다. 한화오션의 필라델피아 조선소 인수는 대표적인 사례로, 1억 달러 이상을 투자하여 조선소 현대화를 추진하고 있다. 이러한 직접 투자를 통해 미국의 조선소 생산성을 높이고, 일자리를 창출하며, 공급망 안정화에 기여하는 것은 'MASGA'의 핵심 목표와 일치한다.
셋째, 한국은 기술 전수 및 인력 양성에 있어 풍부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미국 조선 산업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인 숙련된 인력 부족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한국의 노하우가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맞춤형 설계, 공정 일정 조율, 숙련공의 용접 기술 전수 등 실제 생산 현장에 필요한 실질적인 교육과 멘토링 프로그램을 제공하여 미국 조선 인력의 역량을 강화할 수 있다. 베트남 등 해외 조선소에 한국의 기술과 노하우를 전수하여 성공적으로 현지 조선 산업을 발전시킨 경험은 이러한 기술 전수의 성공 가능성을 뒷받침한다.
넷째, 한국은 조선 금융 지원 및 협력 분야에서도 강점을 지닌다. 수출입은행, 한국 무역 보험 공사, 산업은행 등 정책금융기관을 통한 선박 건조 금융 지원 경험은 물론, 국내 시중은행들도 중형 조선사에 대한 RG(환급보증) 발급 등 적극적인 금융 지원에 나서고 있다. 이러한 금융 역량을 활용하여 미국의 조선 산업 프로젝트에 대한 투자 자금을 조달하거나, 공동 금융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양국 간 협력을 강화할 수 있다. 이는 미국의 조선업체가 자본 문제로 어려움을 겪을 때 효과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
'MASGA'의 실질적 해법과 대미 협상 전략
'MASGA'는 단순히 미국의 조선 산업 재건을 돕겠다는 선언을 넘어, 한국의 실질적인 기여와 미국의 현실적 필요를 연결하는 구체적인 이행 계획을 담아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다음의 실질적인 대안과 협상 전략이 필요하다.
첫째, 미국 현지 조선소와의 직접적인 파트너십 강화 및 공동 투자 모델을 제안해야 한다. 단순히 기술을 제공하는 것을 넘어, 한국 기업이 미국의 노후 조선소에 직접 투자하여 시설을 현대화하고 생산 효율성을 높이는 방안을 제시하는 것이다. 이는 미국의 일자리 창출과 산업 기반 강화에 직접적으로 기여하며, 'Buy American' 정책 기조에도 부합한다. 예를 들어, 특정 군함 유지보수나 전략 상선 건조 프로젝트에 한국 기업이 공동으로 참여하고, 기술 및 자본을 투입하는 형태를 제안할 수 있다. 알래스카 LNG 운반선 건조를 위해 한국의 기술과 투자가 미국 현지 조선소의 건조 역량 강화에 직접적으로 기여하는 방안을 구체화해야 한다. 한화오션이 필라델피아 조선소에 LNG 운반선 전용 신규 도크 건설을 검토하는 것 또한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둘째, 미국 맞춤형 기술 전수 및 인력 양성 프로그램을 구체화해야 한다. 미국의 가장 큰 약점 중 하나인 숙련 인력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한국의 숙련 기술자들이 미국 현지에서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거나, 한국의 선진 조선소에서 미국 인력을 초청하여 연수하는 방안을 제시할 수 있다. 특히 용접, 선체 조립, 자동화 시스템 운영 등 핵심 기술 분야에 대한 실질적인 교육 커리큘럼을 제공하고, 공동 연구개발(R&D)을 통해 차세대 조선 기술을 함께 발전시키는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쇄빙선 건조 및 운용 기술, 그리고 LNG 운반선 핵심 기술 전수 프로그램은 미국의 에너지 안보와 직결되는 핵심적인 제안이 될 것이다.
셋째, 핵심 기자재 및 부품 공급망 협력 강화를 제안해야 한다. 미국 조선 산업의 또 다른 문제는 안정적인 기자재 및 부품 공급망의 부재이다. 한국은 우수한 조선 기자재 산업 생태계를 갖추고 있으므로, 미국의 조선소에 필요한 핵심 부품 및 장비의 안정적인 공급을 약속하거나, 공동 생산을 통해 미국 내 공급망을 강화하는 방안을 모색할 수 있다. 이는 미국의 자국 산업 보호 기조와도 상충되지 않으면서, 실질적인 협력 효과를 창출할 수 있다.
넷째, 조선 금융 지원 협력 방안을 구체적으로 제시해야 한다. 한국의 정책금융기관과 미국 정부 기관 간의 협력을 통해 미국의 조선 프로젝트에 대한 공동 금융 지원 프로그램을 제안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미국 조선소가 신규 선박 건조나 설비 현대화를 추진할 때, 한국의 금융기관이 자금 조달을 돕거나, 양국 정부가 공동으로 지원 기금을 조성하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다. 이는 미국의 조선업체가 자본 문제로 어려움을 겪을 때 실질적인 도움을 제공하며, 장기적인 협력 관계를 구축하는 데 기여할 것이다.
결론적으로, 'MASGA'가 미국의 닫힌 문을 열기 위해서는 단순히 호혜적인 제안을 넘어, 미국의 현실적인 필요를 정확히 파고들고 한국의 강력한 경쟁력을 바탕으로 한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협력 방안을 제시해야 한다. 군함 MRO, 전략 상선 건조, 그리고 알래스카 프로젝트에 필수적인 쇄빙선 및 LNG 운반선 건조 등 미국의 핵심 수요를 충족시킬 수 있는 기술 이전, 현지 투자, 인력 양성, 금융 지원 등 다각적인 접근을 통해 미국 조선 산업의 재건에 한국이 필수적인 파트너임을 설득해야 한다. 이러한 전략적인 접근만이 미-한 관세 협상의 긍정적인 결과를 이끌어내고, 양국 간 조선 산업 협력의 새로운 지평을 열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