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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지금 모병제인가? 새로운 국방의 길을 열 수 있을까

by 쓸모 & 쓰임새 2025. 5. 1.

 

한국에서 모병제 논의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하지만 2025년 현재, 이 논의는 대선 공약과 맞물려 다시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그 배경에는 출산율 감소라는 구조적 문제와 안보 패러다임의 전환, 청년층의 군 복무에 대한 불만, 기술 기반 전쟁의 부상 등 복합적 요인이 작용하고 있다. 인구 감소로 인해 병력 확보가 점점 어려워지는 지금, ‘모든 남성이 일정 기간 군 복무를 해야 한다’는 징병제의 지속 가능성은 흔들리고 있다. 미래의 전쟁이 양보다 질을 요구하는 시대라면, 선택된 인재를 중심으로 한 전문 전력으로의 전환은 불가피해 보인다.

 

 

징병제? or 모병제?

2. 없는 집 아이들만 군대에 가게 되는가?

모병제 도입에 대한 가장 큰 우려 중 하나는 ‘계급의 군대화’다. “돈 있는 집 아이는 가지 않고, 가난한 집 아이들만 군에 간다”는 비판이다. 그러나 이는 제도의 설계에 따라 충분히 보완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군 복무를 통해 고수준의 교육과 진로 연계 기회를 제공하고, 복무 기간을 사회적 상승 통로로 설계하면 ‘기피 대상’이 아닌 ‘선호 직업’으로 바뀔 수 있다. 미국이나 독일의 군대가 일종의 ‘사회적 사다리’ 역할을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중요한 것은 단순한 선택의 자유가 아니라, 그 선택이 공정하고 유의미하도록 국가가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다.

 

3. 모병제를 활용한 청년 실업 해결책은 가능한가?

모병제는 청년 실업 문제의 단기적 해결책이 될 수 있다. 고졸, 전문대 졸업자 혹은 취업 준비생에게 군은 안정적 급여와 숙식, 기술 교육, 전역 후 취업 지원 등을 제공하는 ‘안정적 기회’가 될 수 있다. 특히 4차 산업혁명 기술과 접목된 첨단 병과나 사이버전 부대는 청년층이 선호할 수 있는 영역이다. 물론 이것이 청년 실업 문제의 ‘궁극적 해답’이 될 수는 없다. 군이 모든 실업 문제를 흡수하는 ‘고용창고’가 되어선 안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정 수준의 고용 완충 장치로서 기능할 수 있음은 분명하다.

 

4. 징병제의 폐해: 효율성을 떨어뜨리는 순환 구조

징병제의 가장 큰 문제점은 전문성 축적이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막 훈련이 끝나 전투력에 익숙해질 무렵, 병사는 전역한다. 병력이 끊임없이 순환되기 때문에 지속적인 전투력 유지가 어렵고, 숙련도는 늘 ‘초급자’ 수준에 머문다. 이로 인해 장기 복무 간부에게 과도한 부담이 쏠리며, 복무자 간의 전투력 격차도 심화된다. 더 큰 문제는 국가 예산의 비효율성이다. 매년 수만 명의 병사에게 기초 군사훈련을 반복적으로 제공하는 데 드는 비용은 결코 적지 않다. 결국 병역은 유지되지만, 전투력은 기대 이하가 되는 이중 구조에 빠지는 것이다.

 

5. 모병제를 통한 전문 군인 양성은 가능한가?

모병제의 핵심은 ‘전문성’이다. 자발적으로 군에 입대한 이들에게 장기 복무를 제시하고, 지속적인 훈련과 교육을 제공함으로써 ‘직업군인’으로 성장시키는 것이다. 이미 일부 병과에서 시행되고 있는 부사관 중심의 전문병 제도는 이 방향의 가능성을 잘 보여준다. 인공지능, 드론, 사이버전 등 신기술 기반의 군사 전략이 핵심이 되는 현대 전장에서, 오히려 복잡한 기술을 단기간에 이해하기 어려운 징병제 병사보다, 지속적으로 교육받은 모병제 인력이 전투력을 더 효율적으로 발휘할 수 있다. 모병제를 성공적으로 운영하는 국가는 대부분 군을 ‘직업과 기술의 훈련소’로 설계하고 있다.

 

6. 모병제에 대한 여론은?

최근 한국갤럽과 리얼미터 등의 조사에 따르면, ‘징병제 유지’를 선호하는 응답이 여전히 다수이긴 하나, 모병제에 대한 수용도도 점차 증가하는 추세다. 특히 20대와 30대 남성층에서 모병제 선호도가 상대적으로 높다. 그러나 반대 의견도 뚜렷하다. 국가 안보를 개인의 선택에 맡기는 것에 대한 불안, 예산 부담에 대한 우려, 계층 간 복무율 차이에 대한 문제 제기가 그것이다. 여론은 분열되어 있지만, 과거보다 훨씬 현실적인 논의가 가능해진 것은 분명하다. 감정적 논쟁에서 벗어나, 구체적 실행 가능성과 전환 전략에 대한 성숙한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7. 모병제를 실행하는 외국의 사례

세계적으로는 미국, 영국, 프랑스 등 대부분의 선진국이 모병제를 시행하고 있다. 미국은 자국 군을 ‘사회적 이동의 통로’로 활용하며, 고등교육 연계, 주택 지원, 의료 혜택 등을 통해 직업군인의 삶을 적극 보장한다. 아시아권에서는 타이완이 최근 징병제를 폐지하고 모병제로 전환했다. 하지만 중국의 위협이 커지자, 다시 ‘혼합형’ 병역제를 추진하고 있는 상황이다. 싱가포르는 징병제를 유지하되, 장기 복무자에게 고액의 보상과 교육 기회를 제공해 ‘준모병제’와 같은 성격으로 운영 중이다. 이처럼 모병제는 각국의 안보 환경과 사회 구조에 맞게 ‘맞춤형’으로 구현되고 있다.

 

8. 모병제를 위한 전제조건

 

모병제를 도입하기 위한 기본 전제조건은 그 자체로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모병제의 효과적인 실행을 위해서는 단순히 제도적인 변화뿐만 아니라, 국가 전반에 걸쳐 다음과 같은 조건들이 충족되어야 한다.  이 조건들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모병제는 오히려 군의 효율성을 저하시킬 수 있고, 예산 낭비나 사회적 갈등을 초래할 위험이 있다.


8.1. 사회적 합의와 정치적 의지

모병제의 도입은 단순한 군사적 결단이 아니라 사회적, 정치적 합의가 중요한 문제이다. 국민 대다수가 이 제도의 필요성에 동의하고, 정치인들이 이를 추진할 의지를 가져야 한다. 특히 국방이라는 민감한 사안을 다루는 만큼, 국민적 동의 없이 무리하게 진행된다면 사회적 갈등과 불안정이 야기될 수 있다. 즉, 군 복무의 의미와 목적, 그리고 전환 과정에 대한 명확한 설명과 공감대 형성이 필수적이다. 또한, 여론의 변화와 정치적 협상이 중요한 만큼, 충분한 논의와 타협이 필요하다.

8.2. 경제적 기반 확보

모병제를 운영하기 위한 경제적 비용은 징병제보다 훨씬 더 많은 예산이 소요된다. 자원봉사 군인에게 제공해야 할 급여, 훈련, 보상 등 다양한 혜택은 국가 재정에 부담을 줄 수 있다. 이는 국가의 예산 구조와 밀접한 연관이 있으며, 모병제를 도입할 경우 국방 예산의 우선순위 변경이 필요할 수 있다. 추가적인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세금 인상이나 다른 분야에서의 예산 절감 등이 필수적으로 따라와야 한다.

8.3. 군사적 필요와 안보 환경

모병제의 효과적인 실행을 위해서는 국가의 안보 상황에 대한 충분한 분석이 필요하다. 만약 현재와 같은 동북아시아의 군사적 긴장 상황에서 전방위적인 군사 훈련과 빠르게 증가하는 전투 전문성이 요구된다면, 모병제만으로 모든 군사적 필요를 충족시키는 것이 어려울 수 있다. 국가 안보를 위해서는 군의 직업화가 더 중요해지며, 이 과정에서 군사적 자원의 집중 배치가 필요하다. 이는 모병제를 운영하는 다른 국가들과 비교하며, 자신의 안보 상황에 맞는 정책을 설계하는 과정이 중요하다다.

8.4. 군 내 전문성 향상과 교육 체계 강화

모병제는 군의 전문성 강화를 위한 제도적 기반이 필요하다. 징병제는 대부분의 병사가 단기간 내 훈련을 받고 복무를 마치므로, 전반적인 전문성이 부족하다. 반면, 모병제는 군 복무를 선택한 사람들이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해 훈련을 받게 되므로 군사적 기술 수준이 향상된다. 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철저한 교육 체계와 훈련 프로그램이 마련되어야 하며, 군사 기술 분야의 특화된 교육과 장기적 경력 개발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예를 들어, 사이버전, 드론 전투, 첨단 무기 시스템 운용 등의 분야에서 높은 전문성을 갖춘 인재를 양성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반드시 필요하다.

8.5. 사회적 균형과 공정성

모병제를 시행하는 과정에서 가장 큰 우려 중 하나는 사회적 불균형이 초래되는 것이다. 특정 계층이나 지역에서만 군 복무를 하게 되면, 군대 내 계층적 불평등이 심화될 수 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군 복무가 공정하고 기회 균등적으로 이루어져야 하며, 군 복무 후 취업 지원이나 승진 기회 등에서 균등한 대우가 제공되어야 한다. 또한, 다양한 사회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군에 지원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장치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 군의 근무 조건을 향상시키고, 군 복무를 하나의 사회적 상승 기회로 만드는 정책이 필요하다.

8.6. 복무 후 재정착과 사회적 지원

모병제의 또 다른 중요한 전제조건은 군 복무 후 병사의 사회 복귀 지원이다. 모병제에서는 장기 복무 후 제대하는 병사들이 대부분 ‘전문직’으로 활동하게 되므로, 이들이 사회에 재정착할 수 있도록 직업 연계, 취업 지원, 교육 기회를 제공하는 시스템이 마련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군 복무 중 받은 교육을 바탕으로 민간에서의 취업 기회를 마련하거나, 군 복무 후 직업 훈련을 연계하여 경력 단절 없이 사회에 재진입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군 복무가 단순히 ‘시간 때우기’가 아닌 ‘직업적인 경로’로 바뀌게 된다.

8.7. 장기적 군 인력 구조의 변화

모병제의 도입은 군 내 인력 구조의 근본적인 변화를 의미한다. 징병제는 대체로 기본적인 훈련을 받은 후 전방위적인 전투에 배치되지만, 모병제에서는 특정 분야의 전문성이 요구된다. 그러므로 군 내의 직급과 부대 배치, 그리고 전략적 역할 설정이 달라질 수 있다. 특히, 모병제 하에서는 전문 군인들이 집중적으로 배치되어 고도로 특화된 군사 작전을 수행하게 되므로, 전투의 형태나 전략적 접근이 기존의 징병제와는 차별화될 수 있다. 이에 따라 군 인력의 모집과 관리 체계도 달라져야 하며, 인력의 질적 향상도 중요한 목표가 된다. 


결론적으로, 모병제를 도입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군 복무 방식의 전환을 넘어서,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차원에서의 준비가 필수적이다.  각종 시스템과 정책의 개선이 동반되지 않으면 모병제는 그 본래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할 수 있다. 군의 전문성과 효율성을 강화하는 동시에, 사회적 불균형을 해소하고 국가의 안보를 더욱 강화할 수 있는 방향으로 모병제를 설계하는 것이 중요하다.

 

9. 징병제와 모병제를 함께 운용할 수는 없는가?

이분법적으로 ‘징병이냐 모병이냐’를 선택할 것이 아니라, ‘혼합형 모델’을 진지하게 고민할 때다. 예를 들어, 일정 병력은 징병제로 충원하되, 특정 기술 병과나 전투 부대는 모병제로 운영하는 식이다. 현재 한국군의 전문병제나 부사관 제도도 이 방향과 닮아 있다. 혼합형은 이행 과정의 혼란을 줄이고, 사회적 수용성을 높이는 데 유리하다. 특히 안보 위협이 여전히 실존하는 한반도에서, 갑작스러운 전환보다는 점진적이고 전략적인 병역 체계 개편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어떤 군대를 만들 것인가’에 대한 사회적 합의와 비전이다. 병역 제도는 그에 따르는 수단일 뿐이다.


결론적으로, 모병제는 단순한 제도 개편이 아니라, 미래 국방과 사회 구조를 다시 설계하는 일이다. 기술이 전쟁의 양상을 바꾸고, 인구 감소가 현실이 된 지금, 국가는 더 이상 징병제의 관성에만 의존할 수 없다. 그러나 전환은 신중해야 한다. 그것이 군의 전문성을 강화하면서도, 사회적 공정성과 안보 효율성을 함께 확보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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