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종종 정치적 입장을 묻는 질문 앞에서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답합니다. "나는 진보다", "나는 보수다", 혹은 "나는 중도지". 그 대답은 마치 미리 준비해 둔 것처럼 빠르고 당당합니다. 하지만 그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오히려 이렇게 되묻고 싶습니다. “그게 정말 당신의 생각인가요, 아니면 주변에서 듣고 익숙해진 말인가요?” “당신은 진짜로 ‘진보’가 뭔지, ‘보수’가 뭔지 제대로 알고 계신가요?” 어쩌면 우리 대부분은 스스로를 특정한 방향으로 규정하지만, 정작 그 의미를 깊이 고민해본 적은 많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정치 성향은 절대값이 아니다
보통 진보는 '변화를 지향하는 이들'이라 불리고, 보수는 '전통을 지키는 이들'로 요약됩니다. 하지만 현실의 삶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때로는 과감한 개혁을 원하고, 또 어떤 순간에는 지켜야 할 가치를 소중히 여기기도 합니다. 사람의 생각은 시간과 경험에 따라 변합니다. 그렇기에 누군가의 성향을 딱 하나로, 한쪽으로 고정 짓는 것은 어쩌면 편의적인 분류일 뿐입니다.
진보와 보수,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
정치에 대한 논쟁을 피해야 한다는 말은 흔히 듣습니다. 왜냐고요? 의견 차이가 커서 결론이 안 나고, 대화가 싸움으로 번지기 때문이죠. 그래서 우리는 정치 이야기를 일부러 피하고, 모른 척 넘기고 맙니다. 그러나 ‘피하는 것’이 항상 지혜일까요? 불편하다고 해서 논의조차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과연 무엇을 통해 사회를 개선할 수 있을까요? 중요한 건 누가 진보이고 누가 보수인가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어떤 주장이 ‘옳은가’, ‘공정한가’, 그리고 ‘지속 가능한가’입니다.
이념이 아닌 태도가 문제
보수주의를 처음 설계한 서구 사상가들은 보수를 단순히 ‘옛것을 고수하는 것’으로 보지 않았습니다. 그들에게 보수는 “소중한 것을 지키고자 하는 신중한 태도”였습니다. 급격한 변화가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는 경계, 공동체의 경험과 전통에서 배운 지혜를 이어가고자 하는 의지, 이것이야말로 진짜 보수의 본질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의 ‘보수’는 어떤 모습인가요? 전통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기득권을 놓지 않기 위해 편향된 이념을 들먹이고, 정작 ‘공동체’, ‘역사’, ‘문화’를 말하면 비난하거나 외면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진정한 의미의 보수가 아니라 ‘수구’라는 표현을 씁니다.
진보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변화를 ‘무조건적인 진보’로 여기고, 그 속도와 방법에 대해 질문조차 허용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더 이상 ‘건설적인 변화’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보편적 가치, 그것이 기준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이제는 이렇게 제안하고 싶습니다. ‘보수냐, 진보냐’라는 이분법을 넘어, 어떤 주장이 ‘보편적 가치’를 담고 있는지를 먼저 물어야 한다고.
보편적 가치란 단지 많은 사람이 동의하는 것을 뜻하지 않습니다.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타당하며, 공동체 전체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생각과 태도를 말합니다. 그 기준에 부합한다면, 그 주장이 보수의 것이든 진보의 것이든 중요하지 않습니다. 옳고 그름은 이념의 색깔이 아니라, 내용과 실천으로 판단되어야 합니다.
새로운 보수, 그리고 성찰의 정치
보수는 본래 ‘보호하고 지키는’ 정신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특정 계층의 이익만을 위한 보호라면, 그것은 보수의 탈을 쓴 이기심일 뿐입니다. 보수는 ‘보편적인 것을 지키는 자세’, 다시 말해 “보편을 수호하는 태도(普守)”로 거듭나야 합니다. 진정한 보수는 따뜻하고, 신중하며, 포용적입니다. 진정한 진보는 날카롭고, 빠르되, 사람을 위한 것입니다. 우리는 이제 ‘정치적 진영’이 아니라 ‘도덕적 기준’, ‘공공의 혜안’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시작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진짜 물어야 할 질문은 이것입니다.
“나는 보수인가, 진보인가?”가 아니라, “나는 지금 옳은 선택을 하고 있는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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