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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과 에포케, 가짜뉴스 시대의 생존법

쓸모 & 쓰임새 2025. 4. 30. 10:08

보통 우리는 가짜뉴스에 속는 사람들을 무식하거나, 생각이 짧은 이들로 치부하곤 한다. 하지만 스탠퍼드대 심리학 교수 제프리 코헨이 이끈 연구는 이 편견을 정면으로 부순다. 그들은 실험을 통해, 교육이나 소득 수준과 무관하게 사람들이 '사실 여부'가 아닌 '자신의 신념과 맞느냐'를 기준 삼아 진위를 가른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성은 왜 가짜뉴스 앞에 무너지는가

 

2020년 미국 대선을 앞두고 진행된 실험에서 참가자들은, 뉴스가 진짜인지 가짜인지를 떠나 자신의 정치적 성향에 부합하는 내용을 더 쉽게 믿었다. 심지어 "나는 중립적으로 판단했다"고 스스로를 안심시키기까지 했다. 연구진은 이를 ‘편의적 정확성(convenient accuracy)’이라고 불렀다. 즉, 사람들은 진실을 좇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에게 위안을 주는 쪽으로 정확성을 재단하는 경향을 보였던 것이다. 

 

더 흥미로운 사실은 따로 있다. 참가자들은 오히려 진짜 뉴스보다 가짜뉴스의 헤드라인을 더 잘 기억했다. 선동적인 정보가 뇌리에 강하게 각인됐고, 이는 극단적인 정치화로 이어질 것이라 예상됐지만, 급진화보다는 조용한 사고의 굳어짐이 나타났다. 문제는 정치적 변화가 아니라, 사고의 유연성이 서서히 닫힌다는 데 있었다.

 

가짜뉴스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믿기 위해 믿는다'는 인간 심리의 역설

가짜뉴스에 쉽게 넘어가는 이유를 설명하는 심리 이론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바로 '동기화된 추론(Motivated Reasoning)'이다. 인간은 이성적 판단자라기보다, 자신을 합리화하는 존재다. 어떤 정보를 접할 때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묻는다. "이 정보는 내 생각을 지지하는가?" 만약 '그렇다'면 별다른 저항 없이 받아들이고, '아니다'면 복잡한 변명과 합리화가 뒤따른다. 여기에 **'확증 편향(Confirmation Bias)'**이 덧붙여진다. 이미 품고 있는 신념에 부합하는 정보만 선별적으로 받아들이고, 반대되는 사실은 애써 무시하거나 깎아내리는 심리다. 놀라운 건,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이라고 해서 이 심리적 함정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점이다. 오히려 그들은 복잡한 논리와 전문 지식을 동원해, 자신이 믿고 싶은 것을 더욱 교묘히 포장한다.


가짜뉴스를 걸러내는 4가지 훈련

가짜뉴스에 휘둘리지 않으려면 단순한 의심을 넘어, 체계적인 사고 습관이 필요하다. 다음은 가장 핵심적인 네 가지 방법이다.

1) 이해관계 먼저 보기

어떤 뉴스를 접할 때, "이게 진실인가?"를 묻기 전에 "이 정보로 누가 이득을 보는가?"를 먼저 따져야 한다.
출처를 확인하고, 서로 다른 관점을 비교하는 습관은 필수다.

2) 논리적 분석 훈련

'믿을까 말까'를 단순히 고민하는 데 그치지 말자.
논리 구조, 근거 제시, 표현 수법까지 꼼꼼히 따져야 한다.
특히 분노나 감동 같은 강렬한 감정을 유발하는 뉴스라면, 반드시 한 번쯤 의심해보자.

3) 합리적 회의 유지하기

무조건 불신하는 태도가 아니라,
"누가 이 말을 하고 있으며, 왜 이 말을 퍼뜨리려 하는가?"를 끈질기게 질문하는 합리적 회의 정신이 필요하다.

4) 판단 유예(Epoche) 실천

'에포케(Epoche)'는 고대 스토아철학에 뿌리를 둔 개념으로, 어떤 자극적인 정보 앞에서도 즉각 반응하지 않고 판단을 일시 정지하는 태도를 뜻한다. 감정이 요동칠 때, 즉시 믿거나 퍼뜨리는 대신, 잠시 멈춰 사유하는 것. 이 멈춤의 시간이야말로 이성적 대응을 가능케 하는 가장 강력한 무기다.


게이트키퍼는 바로 나

결국, 우리는 스스로 게이트키퍼(gatekeeper)'가 되어야 한다. 뉴스든 소셜 미디어든, 어떤 정보든 마음속으로 들어오기 전에 다음을 자문해야 한다. 


"이것이 내 믿음에 맞아서 좋은 것인가? 아니면 사실이라서 믿는 것인가?" 정보를 무조건적으로 수용하거나 거부하는 대신, 가벼운 비판적 거리감을 유지하는 것. 그것이 정보 홍수 시대를 살아가는 최소한의 생존 전략이다.

 

에포케(Epoke), 즉 판단 보류의 습관은, 반사적 반응이 아닌, 숙고된 대응을 이끌어낸다. '좋다'거나 '나쁘다'는 즉흥적 라벨링 대신, 조금 더 시간을 들여 따져보자. 이 사유의 거리는 결국 우리를 조작과 선동에서 지켜줄 것이다.


믿음과 진실 사이에서

가짜뉴스에 속는 것은 무지나 게으름 때문만은 아니다. 그보다는 인간 내면 깊숙한 본능의 발로다.
믿음은 때때로 사실보다 달콤하고, 진실은 때로 불편하기에, 우리는 본능적으로 더 편한 거짓을 택하고 싶어진다.

그러나 바로 그 순간, 우리는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 "나는 왜 이 이야기를 믿고 싶은가?"
  • "이 믿음이 나를 더 정직한 사람으로 만들어줄까?"

정보를 의심하되, 세상 자체에 대한 신뢰는 잃지 않는 것. 그것이야말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성숙한 인간의 품격일 것이다.

 

그리고 이 글 역시, 당신이 '믿고 싶은' 이야기인지, 아니면 '확인한' 사실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해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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